1837년 이장한(李長漢) 호구단자(戶口單子)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37.4223-20160501.2015000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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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이장한(李長漢)
수취 : 삼척부(三陟府)
· 작성지역 삼척부
· 작성시기 道光拾柒年(1837)
· 형태사항 43.2 X 32.6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7.2*7.2, 三陟府印)
1 (흑색, 장방형, 15.5*5.0, 周挾改印)
· 원소장처 삼척 전주이씨
· 현소장처 삼척시립박물관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837년(헌종 3) 이장한(李長漢)이 25세에 작성하여 삼척부(三陟府)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이 문서에는 열서(列書) 형식이며 이장한의 사조와 모친 밀양박씨(密陽朴氏), 처 흥해배씨(興海裵氏), 처의 사조에 대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주호의 거주지인 삼척부 도상면(道上面)은 현재 삼척시가 아닌 동해시에 속해 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837년(헌종 3) 李長漢이 25세에 작성하여 三陟府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문서에 따르면 이장한계유(1813)생이고 본관은 전주이다. 주호의 거주지는 삼척부 道上面 제3통 제3호인데, 이 지역은 현재 삼척시가 아닌 동해시에 속해 있다.
주호의 사조를 살펴보면 부친은 嘉善大夫 李成大이고 조부는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李伯伊이다. 증조부는 通政大夫 李貴才이고 외조부는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 朴東安으로 본관은 밀양이다.
가족으로는 모친과 처를 기재하고 있는데 모시는 어머니 朴氏는 나이가 64세로 갑오(1774)생이다. 처 裵氏는 나이가 24세이고 갑술(1814)생으로 본관은 흥해이다. 처의 부친은 학생 裵正輝이고 조부는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 裵碩老이다. 증조부는 통정대부 裵莫男이고 외조부는 학생 李道元으로 본관은 전주이다.
연관문서를 살펴보면 전주이씨 가문의 호구문서에는 남성과 여성의 지칭어에서 변화가 보인다. 남성 지칭어의 경우 이장한의 증조부 이귀재는 직역이 유학에서 통정대부로, 조부 이백이는 양인에서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으로, 조모 韓姓은 召史에서 良女, 姓으로 부친 이성대保人에서 業儒, 嘉善大夫이장한業武에서 幼學으로, 모친 朴姓은 良女에서 姓, 氏로 변화가 있다.
관련 연구에 의하면 혈연적으로 가장 가까운 부자, 형제지간에도 유학, 가선대부, 학생 등과 군역자가 섞여 있어 동일 신분으로는 도저히 포괄할 수 없는 직역이 같은 가족구성원에 나타나고 있다. 또한 동일인의 직역도 시기에 따라 대단히 이질적이라고 할 수 있는 직역을 넘나들고 있다. 이로써 전주이씨가의 호구문서 역시 신분상승 변화를 살필 수 있는 사료로 판단된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17세기를 즈음하여 호적에 등록되는 모든 백성이 준호구를 소지하는 관행이 성립됨에 따라 준호구의 작성 작업이 관에서 백성에게로 이관되었다. 나아가 18세기 후반이 지나면서부터는 일부 군현에서 호구단자와 준호구라는 두 종류의 문서가 1장으로 단일화 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각 주호가 호구단자의 형식이든 준호구의 형식이든 1장의 문서를 제출하면 그것을 토대로 호적을 등서한 다음 돌려주었다.
이 호구단자도 19세기에 작성된 것으로 관에서 확인, 대조하여 빠진 里, 統, 戶를 기재하고 잘못된 기재사항을 삭제하였다. 또한 살아있는 사람은 黑墨으로 남녀 성비를 쓰고 准을 쓴 후 수결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문서라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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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황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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