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23년(순조 23) 순조가 삼척에 사는 李成大를 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에 임명하는 문서이다.
가선대부는 조선시대 종2품의 下階 문관의 품계로 동지중추부사는 조선시대 중추부에 소속된 종2품 관직이다. 문서에는 이성대가 위의 품계와 관직을 받은 이유가 기재되어 있는데 園에 나무를 심을 때 흙을 보태주어 그 일로 상을 내리는 임금을 뜻을 받든다 하였다. 순조실록에는 1823년(순조 23) 10월 27일에 徽慶園(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綏嬪朴氏의 묘)에 補土와 植木을 마치고 堂上 楊州牧使 李鍾運에게 嘉善을 가자한 기사가 있다. 이성대도 이와 같이 園의 규모를 가진 무덤에 식목보토하여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에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서에 이성대의 이름이 기재된 부분만 먹이 짙어 문서를 작성한 후에 이성대의 이름이 추가로 기재된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 삼척 전주이씨 가문에는 1741년부터 1882년까지 작성된 20통의 호구류 문서가 전한다. 이성대가 주호로 기록된 문서는 1통이 전하는데 1822년(순조 22) 三陟府에서 李栢伊가 사망하여 대신하는 아들 李成大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이 문서에 의하면 이성대는 갑오(1774)생으로 본관은 전주이고 거주지는 삼척부의 북쪽인 道上面이다. 도상면은 현재 동해시 동남쪽의 단봉동, 대구동, 호현동, 추암동 일대로 짐작된다.
연관문서에 의하면 이성대의 부친은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李柏伊이고 조부는 通政大夫 李貴才이다. 증조부는 李慶夏이고 외조부는 韓尙東으로 본관은 청주이다. 처 朴姓은 1774년생이고 본관은 밀양이다. 아우 業儒 李成彦은 1777년생이고 제수 金姓은 1776년생이다. 아들 유학 李長漢은 1813년생이고, 며느리 裵氏는 1814년생으로 본관 흥해이다.
연관문서에서 지칭어를 살펴보면 삼척 전주이씨 가문의 호구문서에는 남성과 여성 모두 변화가 보인다. 남성 지칭어의 경우 이장한의 증조부 이귀재는 직역이 유학-통정대부, 조부 이백이는 양인-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 조모 韓姓은 召史-良女-姓, 부친 이성대는 保人-業儒-嘉善大夫, 모친 朴姓은 良女-姓-氏로 변화가 있다. 아들 이장한 역시 직역이 業武로 기재되다가 幼學으로 바뀌어 기재되었다.
송양섭(2005)의 연구에 의하면 혈연적으로 가장 가까운 부자, 형제지간에도 유학, 가선대부, 학생 등과 군역자가 섞여 있어 동일 신분으로는 도저히 포괄할 수 없는 직역이 같은 가족 구성원에 나타나고 있다. 또한 동일인의 직역도 시기에 따라 대단히 이질적이라고 할 수 있는 직역을 넘나들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전주이씨 가문의 고문서 역시 신분상승의 변화를 살필 수 있는 사료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