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강원도 삼척시립박물관에 소장중인 전주이씨가 문서로, 1783년(정조 7) 三陟府에서 李貴才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이 가문에 소장중인 호적관련 문서는 모두 20통으로 1741년에서 1882년까지 작성된 것이다. 그 중 1798년에 발급된 준호구를 기점으로 이전의 준호구에서는 본관을 완산이라 기재하였으나 이후 준호구에서는 본관을 전주라고 기재하였다. 이는 완산주가 전주의 옛 이름이기 때문에 이 두 지명을 섞어서 쓰는 경우가 있다. 이에 편의상 전주이씨가로 통칭하고자 한다.
문서에 따르면 通政大夫 이귀재는 삼척부의 북쪽 道上面 제2리 24통 제5호에 거주한다. 삼척부 도상면은 현재 동해시이다. 이귀재의 나이는 65세이고 기해(1719)생이다. 사조의 기재사항을 보면 부친은 李景夏이고 조부는 李重賢이다. 증조부는 李以昌이고 외조부는 全信으로 본관은 정선이다. 사조의 사항에 직역을 기재하지 않고 있다.
가족구성원으로 처, 아들, 며느리를 기재하고 있는데 처 安召史는 나이가 71세이고 계사(1713)생으로 본관은 순흥이다. 부친은 安驗龍이고 조부는 통정대부 安啓鳳이다. 증조부는 嘉善大夫 安立이고 외조부는 盧孝信으로 본관은 강릉이다. 연관문서에서 처의 지칭어를 살펴보면 1741년 문서에는 양반의 아내를 나타내는 氏로 기재했으나 1771년, 1780년, 1783년의 문서에는 양민의 아내를 나타내는 召史로 달리 기재하고 있다.
아들과 며느리는 이 문서에서 처음 기재되는데 아들 李所多以는 나이가 36세이고 무진(1748)생이다. 이후에 발급받은 문서에서는 아들의 이름이 李所多屎로 기재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李所多以는 오기로 판단된다. 며느리 韓良女는 나이가 33세이고 신미(1751)생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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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황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