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780년(정조 4) 三陟府에서 李貴才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일반적으로 준호구는 호구장적에 의거하여 관에서 베껴 주는 문서를 말하는데, 오늘날의 호적등본과 주민등록등본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호주의 신청에 의해 발급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가문에 소장중인 문서는 모두 20통인데, 이중 호적관련 문서는 19통으로 1741년에서 1882년까지 작성된 것이다.
문서에 따르면 道上面 제2리 12통 제3호에 거주하는 通政大夫 이귀재의 나이는 62세이고 기해(1719)생으로 본관은 완산이다. 완산은 전주의 옛 이름으로 현재는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사조의 기재사항을 보면 부친은 李景夏이고 조부는 李重賢이다. 증조부는 李以昌이고 외조부는 全信으로 본관은 정선이다. 조선시대 호구단자 및 준호구에는 사조의 이름과 더불어 직역도 기재하는데 이 문서에는 사조의 직역이 기록되지 않았다.
가족으로는 처만 기재하고 있는데 처 安召史는 나이가 68세이고 계사(1713)생으로 본관은 순흥이다. 부친은 安驗龍이고 조부는 통정대부 安啓鳳이다. 증조부는 嘉善大夫 安立이고 외조부는 盧孝信으로 본관은 강릉이다. 그런데 30년 전인 1741년 정선군에 제출한 호적단자에는 처의 사조 중 부친은 '險龍'에서 '驗龍'으로, 조부는 '戒奉'에서 '啓鳳'으로, 증조부는 '立伊'에서 '立'으로 달리 기재되어 있다.
문서의 좌측 하단에 정ᄌᆞ식연이라는 글자가 있는데 기재시기가 문서 작성 시기와 동일한지 아니면 그 이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정자식년이라는 의미로 보인다.
준호구에 기록된 주호의 거주지인 삼척시 도상면은 현재 동해시이다. 1914년 도상면・도하면・견박곡면이 북삼면으로 통합되었다. 1945년에는 북삼면이 북평읍으로 승격되었고, 1980년에는 삼척군 북평읍과 명주군 묵호읍이 통합되어 동해시가 신설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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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황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