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2년 이성대(李成大)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22.4223-20160501.2015000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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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삼척부(三陟府)
수취 : 이성대(李成大)
· 작성지역 삼척부
· 작성시기 道光二年(1822)
· 형태사항 55.2 X 35.5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7.0*7.0, 三陟府印)
1 (흑색, 장방형, 14.5*4.5, 周挾印)
· 원소장처 삼척 전주이씨
· 현소장처 삼척시립박물관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강원도 삼척시립박물관에 소장중인 전주이씨가 문서로, 1822년(순조 22) 삼척부(三陟府)에서 이백이(李栢伊)가 사망하여 아들 이성대(李成大)에게 대신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주호의 거주지인 삼척부 도상면(道上面) 19통 제4호는 현재 삼척시가 아닌 동해시에 속해 있다. 이 문서는 연서(連書) 형식이며 이성대의 사조와 처 밀양박성(密陽朴姓), 처의 사조, 그리고 아우 업유(業儒) 이성언(李成彦), 제수 김성(金姓)에 대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관인(官印)과 주협개인(周挾改印)이 희미하게 찍혀 있다. 관인의 경우 연호위에 찍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문서에는 주협개인과 같은 자리에 날인되어 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822년(순조 22) 三陟府에서 李栢伊가 사망하여 아들 業儒 李成大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이성대는 나이가 49세이고 갑오(1774)생으로 본관은 전주이다.
준호구에 기재된 주호의 거주지는 道上面 제2리 19통 제4호에 편재되어 있는데 이곳은 현재 삼척시가 아닌 동해시에 속해 있다.
문서의 작성방식은 連書이며 이성대의 사조와 처, 처의 사조, 그리고 率弟와 제수에 대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주호의 사조를 살펴보면 부친은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李柏伊이고 조부는 通政大夫 李貴才이다. 증조부는 李慶夏이고 외조부는 韓尙東으로 본관은 청주이다.
朴姓은 나이가 49세이고 갑오(1774)생으로 본관은 밀양이다. 처의 부친은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 朴東安이고 조부는 통정대부 朴鉄雲이다. 증조부는 嘉善大夫 朴雲伯이고 외조부는 알지 못한다고 기재되어 있다.
아우 업유 李成彦은 나이가 46세로 정유(1777)생이고 제수 金姓은 나이가 47세로 병신(1776)생이다. 아우의 직역인 업유業武와 연관이 있는데 업유업무는 원래 유학과 무학을 닦는 양반 자제에게 붙여진 직역이었다. 하지만 업유업무의 사회적 지위가 하락하면서 유학과 무학을 닦는 양반가 서자들의 직역으로 전환된 것이다.
1837년 준호구에는 아들 이장한이 25세 때 부친 이성대를 대신하여 주호를 맡고 있는데 그렇다면 1822년의 호구문서에서 이장한은 10세로 기재되어야 하지만 본 문서에는 기재되지 않았다. 이유를 살펴보면 호적은 15세 이상의 男丁 인구와 호의 수 파악에 주안점이 있었다. 이 두 가지가 세금을 부담하는 단위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이 어린 남성이나 여성은 기록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官印과 周挾改印이 희미하게 찍혀 있다. 관인의 경우 연호위에 찍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문서에는 주협개인과 같은 자리에 날인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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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황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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