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임지송(林志松)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76.2626-20170501.201600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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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동래부(東萊府)
수취 : 임지송(林志松)
· 작성지역 동래부
· 작성시기 光緖二年(1876)
· 형태사항 36.2 X 54.8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8.0*8.0, 東萊府印)
1 (흑색, 장방형, 16.0*4.0, 周挾無改印)
· 원소장처 동래 옥야임씨
· 현소장처 무릉박물관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876년(고종 13) 3월에 동래부(東萊府)에서 무급제(武及第) 임지송(林志松)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에 의하면 임지송의 나이는 51세이고, 병술(1826)생이며, 본관은 옥야이다. 가족구성원으로는 처 안산이씨(安山李氏)와 모친 동래정씨(東萊鄭氏)가 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876년(고종 13) 3월에 東萊府에서 武及第 林志松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경국대전 준호구식에 따르면 준호구에는 문서의 발급일, 발급관부, 考成籍戶口帳內를 쓰고 主戶의 거주지를 비롯한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처의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가족사항, 노비사항이 기재된다. 이 문서도 이러한 내용을 連書하였다.
문서에 의하면 임지송의 나이는 51세이고 병술(1826)생이며, 본관은 옥야이다. 거주지는 邑內面 西部 校洞里에서 福祥里 제13통 1호로 옮겨 왔다. 이 지역은 오늘날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일대에 해당한다.
1867년 준호구에 出身으로 기재된 임지송의 직역이 본 문서에서는 무급제로 기재되어 있다. 출신급제는 모두 문과・무과 합격자를 지칭하는 말로써 무급제는 문과 합격자와 무과 합격자를 구분하기 위해 급제 앞에 '武'자를 기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임지송1859년(철종 10)에 치러진 증광시에 병과 123위로 합격하였으나, 직역에 관직명이 기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관직에 나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임지송의 사조를 보면 부친은 學生 林景澓이고 조부는 학생 林師俊이며, 증조부는 학생 林盛大이다. 외조부는 嘉義大夫 行同知中樞府事 鄭采淳이며, 본관은 동래이다.
모시고 있는 모친 鄭氏의 나이는 82세이고, 을묘(1795)생이다. 외조부의 인적사항을 통해 본관이 동래임을 알 수 있다.
李氏는 나이가 53세이고, 갑신(1824)생이며, 본관은 안산이다. 안산이씨의 부친은 학생 李學賢이고, 조부는 학생 李仁興이며, 증조부는 通政大夫 李德年이다. 외조부는 學生 李重模로 본관은 경주이다.
임지송이 소유한 노비는 모두 2口인데 그 중 남자종이 1구이고 여자종이 1구이다.
문서의 말미에 '癸酉戶口準給者'라 기재하여 계유년(1873)의 문서와 대조하여 작성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문서의 우측 상단에는 동래부의 官印이 찍혀 있고 좌측 중앙에는 行府使의 署押이 보이며, 하단에는 周挾無改印이 확인된다.
참고문헌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박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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