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76년(고종 13) 3월에 東萊府에서 武及第 林志松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경국대전 준호구식에 따르면 준호구에는 문서의 발급일, 발급관부, 考成籍戶口帳內를 쓰고 主戶의 거주지를 비롯한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처의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가족사항, 노비사항이 기재된다. 이 문서도 이러한 내용을 連書하였다.
문서에 의하면 임지송의 나이는 51세이고 병술(1826)생이며, 본관은 옥야이다. 거주지는 邑內面 西部 校洞里에서 福祥里 제13통 1호로 옮겨 왔다. 이 지역은 오늘날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일대에 해당한다.
1867년 준호구에 出身으로 기재된 임지송의 직역이 본 문서에서는 무급제로 기재되어 있다. 출신과 급제는 모두 문과・무과 합격자를 지칭하는 말로써 무급제는 문과 합격자와 무과 합격자를 구분하기 위해 급제 앞에 '武'자를 기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임지송은 1859년(철종 10)에 치러진 증광시에 병과 123위로 합격하였으나, 직역에 관직명이 기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관직에 나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임지송의 사조를 보면 부친은 學生 林景澓이고 조부는 학생 林師俊이며, 증조부는 학생 林盛大이다. 외조부는 嘉義大夫 行同知中樞府事 鄭采淳이며, 본관은 동래이다.
모시고 있는 모친 鄭氏의 나이는 82세이고, 을묘(1795)생이다. 외조부의 인적사항을 통해 본관이 동래임을 알 수 있다.
처 李氏는 나이가 53세이고, 갑신(1824)생이며, 본관은 안산이다. 안산이씨의 부친은 학생 李學賢이고, 조부는 학생 李仁興이며, 증조부는 通政大夫 李德年이다. 외조부는 學生 李重模로 본관은 경주이다.
임지송이 소유한 노비는 모두 2口인데 그 중 남자종이 1구이고 여자종이 1구이다.
문서의 말미에 '癸酉戶口準給者'라 기재하여 계유년(1873)의 문서와 대조하여 작성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문서의 우측 상단에는 동래부의 官印이 찍혀 있고 좌측 중앙에는 行府使의 署押이 보이며, 하단에는 周挾無改印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