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2년 임우린(林遇麟)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792.2626-20170501.2016000457
URL
복사
복사하기
·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동래부(東萊府)
수취 : 임우린(林遇麟)
· 작성지역 동래부
· 작성시기 乾隆五十七年(1792)
· 형태사항 44.5 X 45.0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7.4*7.4, 東萊府印)
1 (흑색, 장방형, 10.2*4.1, 周挾改印)
· 원소장처 동래 옥야임씨
· 현소장처 무릉박물관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792년(정조 16) 3월에 동래부(東萊府)에서 읍내면(邑內面) 서부(西部) 야정리(野井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임우린(林遇麟)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에 의하면 임우린의 나이는 40세이고, 계유(1753)생이며, 본관은 옥야이다. 가족으로는 처 경주최씨(慶州崔氏)와 모친 김해김씨(金海金氏), 아우 임우표(林遇標)와 제수 변씨(卞氏), 아들 임경순(林景洵)과 차남 임경학(林景鶴)이 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792년(정조 16) 3월에 東萊府에서 幼學 林遇麟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경국대전 준호구식에 따르면 준호구에는 문서의 발급일, 발급관부, 考成籍戶口帳內를 쓰고 주호의 거주지를 비롯한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처의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가족사항, 노비사항이 기재된다. 이 문서도 이러한 내용을 連書하였다.
문서에 의하면 주호인 임우린의 나이는 40세로 계유(1753)생이고, 본관은 옥야이며, 邑內面 西部 野井里 제14통 제1호에서 처와 모친, 아우 내외 및 두 아들과 함께 살았다.
임우린의 사조사항을 보면 부친은 學生 林盛大이고, 생부는 학생 林希大이다. 생부가 기재된 것으로 보아 임우린임성대의 양자임을 알 수 있다. 조부는 학생 林萬澤이고, 증조부는 학생 林一興이며, 외조부는 학생 金善景이다. 외조부의 본관은 김해이다.
모친 金氏는 나이가 62세이며, 신해(1731)생이다. 모친의 본관은 외조부의 인적사항을 통해 김해임을 알 수 있다.
崔氏는 나이가 43세이고, 경오(1750)생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경주최씨의 부친은 학생 崔應奎이고, 조부는 학생 崔錫漢이며, 증조부는 학생 崔東淑이다. 외조부는 학생 玄德潤으로 본관은 영천이다.
아우 林遇標의 나이는 38세이며, 을해(1755)생이다. 제수 卞氏는 나이가 34세이고, 기묘(1759)생이다. 변씨의 본관은 기재하지 않았다.
아들 林景洵의 나이는 15세이며, 무술(1778)생이다. 차남 林景鶴은 7세로 병오(1786)생이다. 가족구성원 중 여성들은 나이를 기재할 때에 '年'자가 아닌 '甲'자로 표기하였다.
본 문서에 기재된 노비는 8口인데, 그 중 남자종 2구와 여자종 2구는 도망친 것으로 기재되어 있고, 노비 2구는 西門路下里에 살고 있어 실제 거느린 노비는 2구로 파악된다.
문서의 말미에 '己酉戶口准給者'를 기재하여 이 준호구는 기유년(1789)의 문서와 대조하여 작성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문서의 우측 상단에는 동래부의 官印이 찍혀 있고, 좌측 상단에는 行府使의 署押이, 하단에는 周挾改印이 확인된다.
주호가 거주한 동래부 읍내면 야정리는 현재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 일대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박정환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