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1년 임사력(林師櫟)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01.2626-20170501.201600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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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동래부(東萊府)
수취 : 임사력(林師櫟)
· 작성지역 동래부
· 작성시기 嘉慶六年(1801)
· 형태사항 47.5 X 50.5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6.5*6.5, 東萊府印)
1 (흑색, 장방형, 13.7*4.3, 周挾無改印)
· 원소장처 동래 옥야임씨
· 현소장처 무릉박물관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801년(순조 1) 3월에 동래부(東萊府)에서 읍내면(邑內面) 서부(西部) 대정리(大井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임사력(林師櫟)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에 의하면 임사력의 나이는 49세이고, 계유(1753)생이며, 본관은 옥야이다.
가족으로는 처 경주최씨(慶州崔氏)와 장남 임경순(林景淳), 며느리 청풍김씨(淸風金氏)가 있다. 아우 임사박(林師樸)과 제수 변씨(卞氏)는 분호(分戶)하였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801년(순조 1) 3월에 東萊府에서 幼學 林師櫟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경국대전 준호구식에 따르면 준호구에는 문서의 발급일, 발급관부, 考成籍戶口帳內를 쓰고 주호의 거주지를 비롯한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처의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가족사항, 노비사항이 기재된다. 이 문서도 이러한 내용을 連書하였다.
주호인 임사력은 나이가 49세이고, 계유(1753)생이며, 본관은 옥야이다. 임사력邑內面 西部 大井里 제10통 제1호에서 처 및 아들 내외와 함께 거주하였다.
임사력의 사조사항을 보면 부친은 通德郞 林盛大이고, 생부는 學生 林希大이다. 생부가 기재된 점으로 볼 때 임사력임성대의 양자임을 알 수 있다. 조부는 학생 林萬澤이고, 증조부는 折衝將軍 行僉知中樞府事 林一興이다. 외조부는 학생 金善景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증조부의 직역이 1789년 발급된 준호구에는 학생으로 기재되어 있었으나 이 문서에는 절충장군 행첨지중추부사로 적혀있다.
崔氏는 나이가 52세이고, 경오(1750)생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경주최씨의 부친은 학생 崔應奎이고, 조부는 학생 崔錫漢이며, 증조부는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崔東淑이다. 외조부는 학생 玄德潤으로 본관은 영천이다. 처의 증조부 직역은 1798년 林師櫟의 준호구에 학생으로 기재되었으나 본 문서에서는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으로 기재되었다.
아우 林師樸과 제수 卞氏凡魚里로 분호하였다. 연관문서를 통해 준호구 작성 당시 임사박의 나이는 47세이고, 을해(1755)생이며, 제수 변씨는 나이가 43세이고, 생년은 기묘년(1759)임을 알 수 있다.
아들 林景淳은 나이가 23세로 기해(1779)생이다. 며느리 金氏는 나이가 20세이고, 임인(1782)생이며, 본관은 청풍이다. 이 문서에 처음으로 며느리 청풍김씨가 기재되었다.
문서에 기재된 노비는 4口로 남자종 1구는 도망갔고, 여자종 2구는 다른 곳에 時居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1구의 노비만을 거느린 것으로 확인된다. 여자종 2구는 각각 西門路下里開城府에서 시거하고 있다.
문서에는 동래부의 官印과 行府使의 署押, 周挾無改印이 확인된다.
임사력이 거주한 동래부 읍내면 대정리는 현재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 일대이다.
참고문헌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박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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