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40년(헌종 6) 3월에 寡女 鄭氏이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경국대전에 전하는 일반적인 준호구의 방식은 連書이고, 관인과 서압 등을 찍는 특징이 있다. 이 문서 또한 전형적인 준호구에 해당하는 방식으로 가족구성원과 노비를 기재하고 있다.
문서에 의하면 과녀 정씨는 東萊府 邑內面 西部 凡魚里 제21통 2호에 거주하였다. 정씨는 을묘(1795)생이며, 당시 나이는 46세이고, 본관은 동래이다. 정씨 앞에 과녀를 붙인 것을 통해 정씨는 남편과 사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정씨의 남편은 연관문서를 통해서 閑良 林景澓으로 확인되는데, 임경복은 1830년 준호구 이후에는 기재되지 않아 1830년에서 1840년 사이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씨의 사조를 살펴보면 부친은 嘉義大夫 同知中樞府事 鄭采淳이고, 조부는 贈嘉善大夫 漢城府左尹 兼五衛都摠府副摠管 鄭德寧이며, 증조부는 贈通政大夫 工曹參議 鄭爾喬이다. 외조부는 學生 辛大馥으로 본관은 영산이다.
가족구성원으로는 아들 1명이 있다. 아들 林志松의 나이는 15세로 병술(1826)생이다. 임지송을 기재하는 부분에 있어서 '林'자를 작게 추기한 것을 볼 수 있다. 노비는 총 3口이지만 1구는 도망가서 실제 거주하고 있는 노비의 수는 2구이다.
문서의 상태를 보면 우측 하단이 도할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씨가 아들과 함께 거주한 동래부 읍내면 서부 범어리는 오늘날 부산광역시 명륜동 일대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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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박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