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 정씨(鄭氏)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40.2626-20170501.2016000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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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동래부(東萊府)
수취 : 정씨(鄭氏)
· 작성지역 동래부
· 작성시기 道光二十年(1840)
· 형태사항 32.6 X 42.5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6.4*6.4, 東萊府印)
1 (흑색, 장방형, 9.6*4.8, 周挾無改印)
· 원소장처 동래 옥야임씨
· 현소장처 무릉박물관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840년(헌종 6) 3월에 동래부(東萊府)에서 읍내면(邑內面) 서부(西部) 범어리(凡魚里)에 거주하는 과녀(寡女) 정씨(鄭氏)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에 의하면 정씨의 나이는 46세이고, 을묘(1795)생이며, 본관은 동래이다. 동래정씨의 가족으로 아들 임지송(林志松)이 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840년(헌종 6) 3월에 寡女 鄭氏이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경국대전에 전하는 일반적인 준호구의 방식은 連書이고, 관인과 서압 등을 찍는 특징이 있다. 이 문서 또한 전형적인 준호구에 해당하는 방식으로 가족구성원과 노비를 기재하고 있다.
문서에 의하면 과녀 정씨東萊府 邑內面 西部 凡魚里 제21통 2호에 거주하였다. 정씨을묘(1795)생이며, 당시 나이는 46세이고, 본관은 동래이다. 정씨 앞에 과녀를 붙인 것을 통해 정씨는 남편과 사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정씨의 남편은 연관문서를 통해서 閑良 林景澓으로 확인되는데, 임경복1830년 준호구 이후에는 기재되지 않아 1830년에서 1840년 사이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씨의 사조를 살펴보면 부친은 嘉義大夫 同知中樞府事 鄭采淳이고, 조부는 贈嘉善大夫 漢城府左尹 兼五衛都摠府副摠管 鄭德寧이며, 증조부는 贈通政大夫 工曹參議 鄭爾喬이다. 외조부는 學生 辛大馥으로 본관은 영산이다.
가족구성원으로는 아들 1명이 있다. 아들 林志松의 나이는 15세로 병술(1826)생이다. 임지송을 기재하는 부분에 있어서 '林'자를 작게 추기한 것을 볼 수 있다. 노비는 총 3口이지만 1구는 도망가서 실제 거주하고 있는 노비의 수는 2구이다.
문서의 상태를 보면 우측 하단이 도할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씨가 아들과 함께 거주한 동래부 읍내면 서부 범어리는 오늘날 부산광역시 명륜동 일대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박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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