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798년(정조 22) 9월 東萊府에서 幼學 林師櫟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경국대전 준호구식에 따르면 준호구에는 문서의 발급일, 발급관부, 考成籍戶口帳內를 쓰고 주호의 거주지를 비롯한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처의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가족사항, 노비사항이 기재된다. 이 문서도 이러한 내용을 連書하였다.
주호인 임사력은 나이가 46세로 계유(1753)생이고 본관은 옥야이며, 邑內面 西部 大井里 제10통 제1호에서 처와 아우 내외, 두 아들과 함께 살았다. 임사력의 본래 이름은 林遇麟으로 1792년 이후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
임사력의 부친은 通德郞 林盛大이고 생부는 學生 林希大이다. 생부가 기재된 점으로 보아 임사력은 임성대의 양자임을 알 수 있다. 조부는 학생 林萬澤이고 증조부는 학생 林一興이다. 외조부는 학생 金善慶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외조부의 이름이 1792년 준호구에서는 金善景으로 적혀 있었으나 본 문서에서는 金善慶으로 기재되어 있다.
모친 金氏는 '故'라 기재되어 있어 사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처 崔氏는 나이가 49세이고 경오(1750)생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경주최씨의 부친은 학생 崔應奎이고 조부는 학생 崔錫漢이며, 증조부는 학생 崔東淑이다. 외조부는 학생 玄德潤으로 본관은 영천이다.
아우는 林師樸으로 나이는 44세이며, 을해(1755)생이다. 林遇標에서 개명한 사실을 기재하였다. 제수 卞氏는 나이가 40세이며, 기묘(1759)생이다.
아들 林景淳은 林憎突에서 개명하였다. 1792년 준호구에 이름이 '林景洵'으로 기재되어 있어 '林景洵'에서 '林憎突'로 다시 '林景淳'으로 개명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임경순의 나이는 20세이고 기해(1779)생이다. 차남 林憎述은 '出繼開城府去'라 기재한 것을 통해 양자가 되어 개성부로 갔음을 알 수 있다.
임사력이 소유하고 있는 노비는 8口로 기재되어 있으나 노비 6구는 다른 곳에 時居하고 있고 노비 1구는 사망하여 실제 거느린 노비는 1구이다. 노비사항과는 별개로 양인 2명이 기재되어 있다.
문서의 말미에 '乙卯戶口准給者'를 기재하여 을묘년(1795)의 문서와 대조하여 작성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문서에는 行府使의 署押과 동래부의 官印, 周挾無改印이 확인된다.
주호가 거주한 동래부 읍내면 대정리는 현재의 행정구역상으로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 일대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