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8년 임사력(林師櫟)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798.2626-20170501.201600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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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동래부(東萊府)
수취 : 임사력(林師櫟)
· 작성지역 동래부
· 작성시기 嘉慶三年(1798)
· 형태사항 53.8 X 58.2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7.3*7.3, 東萊府印)
1 (흑색, 장방형, 10.5*4.3, 周挾無改印)
· 원소장처 동래 옥야임씨
· 현소장처 무릉박물관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798년(정조 22) 9월 동래부(東萊府)에서 읍내면(邑內面) 서부(西部) 대정리(大井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임사력(林師櫟)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에 의하면 임사력의 개명 전 이름은임우린(林遇麟)이고, 나이는 46세이며, 계유(1753)생이다. 본관은 옥야이다. 가족으로 처 경주최씨(慶州崔氏), 아우 임사박(林師樸), 제수 변씨(卞氏), 아들 임경순(林景淳)이 있다. 차남 임증술(林憎述)은 양자가 되어 개성부(開城府)로 갔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798년(정조 22) 9월 東萊府에서 幼學 林師櫟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경국대전 준호구식에 따르면 준호구에는 문서의 발급일, 발급관부, 考成籍戶口帳內를 쓰고 주호의 거주지를 비롯한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처의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가족사항, 노비사항이 기재된다. 이 문서도 이러한 내용을 連書하였다.
주호인 임사력은 나이가 46세로 계유(1753)생이고 본관은 옥야이며, 邑內面 西部 大井里 제10통 제1호에서 처와 아우 내외, 두 아들과 함께 살았다. 임사력의 본래 이름은 林遇麟으로 1792년 이후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
임사력의 부친은 通德郞 林盛大이고 생부는 學生 林希大이다. 생부가 기재된 점으로 보아 임사력임성대의 양자임을 알 수 있다. 조부는 학생 林萬澤이고 증조부는 학생 林一興이다. 외조부는 학생 金善慶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외조부의 이름이 1792년 준호구에서는 金善景으로 적혀 있었으나 본 문서에서는 金善慶으로 기재되어 있다.
모친 金氏는 '故'라 기재되어 있어 사망하였음을 알 수 있다.
崔氏는 나이가 49세이고 경오(1750)생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경주최씨의 부친은 학생 崔應奎이고 조부는 학생 崔錫漢이며, 증조부는 학생 崔東淑이다. 외조부는 학생 玄德潤으로 본관은 영천이다.
아우는 林師樸으로 나이는 44세이며, 을해(1755)생이다. 林遇標에서 개명한 사실을 기재하였다. 제수 卞氏는 나이가 40세이며, 기묘(1759)생이다.
아들 林景淳林憎突에서 개명하였다. 1792년 준호구에 이름이 '林景洵'으로 기재되어 있어 '林景洵'에서 '林憎突'로 다시 '林景淳'으로 개명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임경순의 나이는 20세이고 기해(1779)생이다. 차남 林憎述은 '出繼開城府去'라 기재한 것을 통해 양자가 되어 개성부로 갔음을 알 수 있다.
임사력이 소유하고 있는 노비는 8口로 기재되어 있으나 노비 6구는 다른 곳에 時居하고 있고 노비 1구는 사망하여 실제 거느린 노비는 1구이다. 노비사항과는 별개로 양인 2명이 기재되어 있다.
문서의 말미에 '乙卯戶口准給者'를 기재하여 을묘년(1795)의 문서와 대조하여 작성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문서에는 行府使의 署押과 동래부의 官印, 周挾無改印이 확인된다.
주호가 거주한 동래부 읍내면 대정리는 현재의 행정구역상으로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 일대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박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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