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16년(순조 16) 3월 東萊府에서 幼學 林師俊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경국대전 준호구식에 따르면 준호구에는 문서의 발급일, 발급관부, 考成籍戶口帳內를 쓰고 주호의 거주지를 비롯한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처의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가족사항, 노비사항이 기재된다. 이 문서도 이러한 내용을 連書하였다.
문서에 의하면 임사준은 林師允에서 개명하였다. 임사준의 나이는 64세이고 계유(1753)생이며, 본관은 옥야이다. 주호의 부친은 通德郞 林盛大이고 생부는 學生 林希大이다. 조부는 학생 林萬澤이고 증조부는 折衝將軍 行僉知中樞府事 林一興이다. 외조부는 학생 金善慶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생부사항을 통해 임사준이 임성대의 양자임을 알 수 있다.
처 崔氏는 나이가 67세이고 경오(1750)생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경주최씨의 부친은 학생 崔應奎이고 조부는 학생 崔鍚漢이며, 증조부는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崔東淑이다. 증조부의 직역을 기재하는데 있어 용양위부호군의 '軍'을 '君'으로 잘못 기재하였다. 외조부는 학생 玄德潤으로 본관은 영천이다.
아들 林景淳은 나이가 38세이며, 기해(1779)생이다. 1792년 준호구에 이름이 '林景洵'으로 기재되어 있어 '林景洵', '林景淳', '林憎突', '林景淳' 순으로 개명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며느리 裵氏는 나이가 34세이고 계묘(1783)생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1801년 林師櫟의 준호구에는 임경순의 부인이 淸風金氏로 기재되었으나 이 문서에서는 김해배씨가 기재되어 있다. 이를 통해 청풍김씨가 사망하여 임경순은 김해배씨와 재혼한 것으로 보인다.
차남 林景澈은 野井里로 분호하였다. 1813년 임경철의 준호구에 의하면 임경철은 이미 문서를 발급받을 시점에 처 東萊鄭氏가 있었는데 이 문서에서는 기재하지 않았다.
노비는 3口가 기재되어 있는데 여자종 貴化와 五月은 西門路下里에 살고 있으며, 여자종 八月과 남자종 五作과 尙泰는 각각 開城과 京城에 時居하고 있다.
문서의 우측 상단에는 동래부의 官印이 찍혀 있고 좌측 상단에는 行府使의 署押이, 하단에는 周挾無改印이 확인된다.
임사준이 거주한 동래부 西部 客達里는 현재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일대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