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25년(순조 25) 3월에 東萊府에서 閑良 林景㵓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경국대전 준호구식에 따르면 준호구에는 문서의 발급일, 발급관부, 考成籍戶口帳內를 쓰고 주호의 거주지를 비롯한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처의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가족사항, 노비사항이 기재된다. 이 문서도 이러한 내용을 連書하였다.
문서에 따르면 임경식은 邑內面 西部 客達里 제4통 제3호에 처와 모친, 두 아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 임경식의 나이는 47세로 기해(1779)생이며, 본관은 옥야이다. 이 문서에는 개명한 사실이 기재되지 않았지만 임경식의 부친인 林師俊의 준호구를 통해 임경식은 林景淳에서 개명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임경식의 사조를 보면 부친은 學生 임사준이고, 조부는 通德郞 林盛大이며, 증조부는 학생 林萬澤이다. 외조부는 학생 崔應奎로 본관은 慶州이다.
모친 崔氏의 나이는 76세이고, 경오(1750)생이다. 최씨의 본관은 외조부의 인적사항을 통해 경주임을 알 수 있다. 처 裴氏는 나이가 43세이고, 계묘(1783)생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김해배씨의 부친은 학생 裴東毅이고, 조부는 학생 裴珪이며, 증조부는 학생 裴世恒이다. 외조부는 학생 李宗延으로 본관은 연안이다.
아들 林宗孫은 나이가 14세이고, 임신(1812)생이다. 차남 林宗伯의 나이는 8세이고, 무인(1818)생이다. 이 문서에는 기재되지 않았지만 1828년에 발급된 준호구를 통해 3남 林時連도 함께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문서가 작성될 당시 임시연의 나이는 2세로 어려서 기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문서에 기재된 노비는 3口인데, 남자종 1구와 여자종 2구로 모두 다른 지역에 時居하고 있다.
문서의 말미에 '壬午戶口準給者'를 기재하여 임오년(1822)의 문서와 대조하여 작성된 문서임을 밝히고 있다.
문서의 우측 상단에는 동래부의 官印이 찍혀 있고, 중앙 상단에는 行府使의 署押이 보이며, 좌측 하단에는 周挾無改印이 확인된다.
임경식이 거주한 동래부 읍내면 서부 객달리는 현재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일대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