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28년(순조 28) 3월 東萊府에서 閑良 林景澓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경국대전 준호구식에 따르면 준호구에는 문서의 발급일, 발급관부, 考成籍戶口帳內를 쓰고 주호의 거주지를 비롯한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처의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가족사항, 노비사항이 기재된다. 이 문서도 이러한 내용을 連書하였다.
문서에 따르면 주호의 나이는 40세로 기유(1789)생이고, 본관은 옥야이며, 林景澈에서 임경복으로 개명하였다. 거주지는 邑內面 西部 凡魚里 제17통 3호로 이 지역은 현재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일대로 추정된다.
임경복의 부친은 學生 林師俊이고 조부는 通德郞 林盛大이며, 증조부는 학생 林萬澤이다. 외조부는 학생 崔應奎로 본관은 경주이다.
처 鄭氏는 나이가 34세이고 을묘(1795)생이며, 본관은 동래이다. 동래정씨의 부친은 嘉義大夫 同知中樞府事 鄭采淳이고 조부는 贈嘉善大夫 漢城府左尹 兼五衛都摠府副摠管 鄭德寧이다. 증조부는 贈通政大夫 工曹參議 鄭爾喬이다. 외조부는 학생 辛大馥으로 본관은 영산이다.
본 문서에는 기재하지 않았지만 임경복에게는 아들이 1명이 있는데 이름은 林志松이다. 임지송은 1826년생으로 당시 나이가 3살로 너무 어려 기재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소유한 노비로는 여자종 1口가 있다.
문서의 말미에 '乙酉戶口準給者'를 기재하여 을유년(1825)의 문서와 대조하여 작성된 문서임을 밝히고 있다.
문서를 살펴보면 접은 흔적이 보이고, 중앙 부분에 오염이 확인된다. 문서의 우측 상단에는 동래부의 官印이 찍혀 있고 좌측 상단에는 行府使의 署押이 있다. 周挾無改印은 노비를 기재한 행 좌측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박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