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31년(순조 31) 3월에 東萊府에서 閑良 林景澓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경국대전 준호구식에 따르면 첫 행에 문서의 발급일과 발급관청을 쓰고, 考成籍戶口帳內를 기두어로 시작하여 주호의 거주지를 비롯한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처의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가족사항, 노비사항을 기재한다. 일반적으로 준호구는 連書를 하는데, 이 문서 또한 그러한 양식에 맞춰 작성되었다.
문서에 의하면 邑內面 西部 凡魚里 제17통 3호에 거주하는 임경복의 나이는 43세로 기유(1789)생이며, 본관은 옥야이다. 주호의 사조를 보면 부친은 學生 林師俊이고, 조부는 通德郞 林盛大이며, 증조부는 학생 林萬澤이다. 외조부는 학생 崔應奎로 본관은 경주이다.
처 鄭氏는 나이가 37세이고, 본관은 동래이다. 문서에는 처 동래정씨의 생년간지가 기재되지 않았으나 연관문서를 통해 을묘(1795)생임을 알 수 있다. 동래정씨의 부친은 嘉義大夫 同知中樞府事 鄭采淳이고, 조부는 贈嘉善大夫 漢城府左尹 兼五衛都摠府副摠管 鄭德寧이다. 증조부는 贈通政大夫 工曹參議 鄭爾喬이며, 외조부는 학생 辛大馥으로 본관은 영산이다.
아들 林志松은 나이가 6세이고, 병술(1826)생이다. 본 문서에서 임지송에 대해 처음 기재하고 있다.
문서에 기재된 노비사항에 따르면 여자종 丁春이 있고, 정춘의 남편은 束伍軍 郭順業이다. 여자종 十月은 1834년 임경복의 준호구에 의하면 곽순업의 소생으로 기재되어 있다.
문서의 말미에 '戊子戶口准給者'를 기재하여 무자년(1828)의 문서와 대조하여 작성된 문서임을 밝히고 있다.
문서의 우측 상단에는 동래부의 官印이 찍혀 있고, 좌측 상단에는 行府使의 署押이 보이며, 하단에는 周挾無改印이 확인된다.
임경복이 거주한 동래부 읍내면 서부 범어리는 현재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일대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