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52년(철종 3) 3월에 東萊府에서 閑良 林志松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경국대전 준호구식에 따르면 준호구에는 문서의 발급일, 발급관부, 考成籍戶口帳內를 쓰고 주호의 거주지를 비롯한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처의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가족사항, 노비사항이 기재된다. 이 문서도 이러한 내용을 連書하였다.
문서에 의하면 임지송의 나이는 27세이고, 병술(1826)생이며, 본관은 옥야이다. 거주지는 邑內面 西部 凡魚里 제9통 5호로 오늘날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일대로 추정된다.
주호의 사조사항을 보면 부친은 學生 林景澓이고 조부는 학생 林師俊이며, 증조부는 학생 林盛大이다. 외조부는 嘉義大夫 行同知中樞府事 鄭采淳이다. 특이사항으로는 1846년 임지송의 준호구에서 증조부 임성대의 직역은 通德郞이었으나 본 문서에서는 학생으로 기재되어 있다. 또한 외조부의 본관을 기재하지 않았는데 모친 鄭氏의 기재사항을 통해 본관이 동래임을 알 수 있다.
모시고 있는 모친 정씨는 나이가 58세이고, 을묘(1795)생이며, 본관은 동래이다.
처 李氏의 나이는 29세로 갑신(1824)생이며, 본관은 안산이다. 안산이씨의 사조사항을 보면 부친은 학생 李學賢이고 조부는 학생 李仁興이며, 증조부는 通政大夫 李德年이다. 외조부는 학생 李重模로 본관은 경주이다.
노비에 대해서는 여자종 雲節이 있는데, 운절의 생년은 신해년이다. 문서에 '贖養'이라고 기재한 것으로 보아 운절을 매득하여 길렀음을 알 수 있다. 연관문서를 통해 신해년은 1851년으로 추정된다.
문서의 말미에 '己酉戶口準給者'가 기재되어 있어 기유년(1849)의 문서와 대조하여 작성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문서의 우측 상단에는 동래부의 官印이 찍혀 있고 좌측 상단에는 行府使의 署押이 보이며, 하단에는 周挾無改印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