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28년(순조 28) 3월 東萊府에서 閑良 林景㵓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경국대전 준호구식에 따르면 준호구에는 문서의 발급일, 발급관부, 考成籍戶口帳內를 쓰고 주호의 거주지를 비롯한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처의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가족사항, 노비사항이 기재된다. 이 문서도 이러한 내용을 連書하였다.
문서에 의하면 임경식은 邑內面 西部 客達里 제5통 3호에서 처와 모친, 세 아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 임경식의 나이는 50세이고 기해(1779)생이며, 본관은 옥야이다. 임경식의 사조를 보면 부친은 學生 林師俊이고 조부는 通德郞 林盛大이며, 증조부는 학생 林萬澤이다. 외조부는 학생 崔應奎로 본관은 경주이다.
어머니 崔氏를 모시고 있는데 나이는 79세이고 경오(1750)생이다. 최씨의 본관은 외조부의 기재사항을 통해 경주을 알 수 있다.
처 裵氏는 나이가 46세이고 계묘(1783)생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부친은 학생 裵東毅이고 조부는 학생 裵珪이며, 증조부는 학생 裵世恒이다. 외조부는 학생 李宗延으로 본관은 연안이다.
장남 林宗孫은 나이가 17세이고 임신(1812)생이다. 차남 林宗伯은 나이가 11세이고 무인(1818)생이다. 삼남 林時連은 나이가 5세이고 갑신(1824)생이다. 임시연의 기재사항 앞에 '加'라 표기하였는데 이를 통해 시연은 이번 문서에 처음 기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임경식이 소유한 노비는 총 3口인데 모두 다른 지역에 時居하고 있다.
문서의 말미에 '乙酉戶口準給者'를 기재하여 을유년(1825)의 문서와 대조하여 작성된 문서임을 밝히고 있다.
문서의 우측 상단에는 동래부의 官印이 찍혀 있고 좌측 상단에는 行府使의 署押이 보이며, 하단에는 周挾無改印이 확인된다.
임경식이 거주한 읍내면 서부 객달리는 현재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일대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