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37년(헌종 3)에 東萊府에서 寡女 鄭氏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閑良 林景澓이 사망하여 처 정씨가 대를 이어 주호가 되었다. 아들 林志松이 있었지만 나이가 어려 주호가 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전 주호인 임경복은 1834년에서 1837년 사이에 사망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정씨의 나이는 43세이고, 을묘(1795)생이며, 본관은 동래이다. 거주지는 邑內面 西部 凡魚里 제15통 2호로 이 지역은 현재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일대에 해당한다.
정씨의 사조를 보면 부친은 嘉義大夫 同知中樞府事 鄭采淳이고, 조부는 贈嘉善大夫 漢城府左尹 兼五衛都摠府副摠管 鄭德寧이며, 증조부는 贈通政大夫 工曹參議 鄭爾喬이다. 외조부는 學生 辛大馥으로 본관은 영산이다.
아들 임지송의 나이는 12세이고, 병술(1826)생이다.
문서에 기재된 노비는 2口이다. 여자종 十月은 여자종 丁春의 1소생으로 준호구에 '放良'으로 기재된 것으로 보아 양인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雇奴 金亥淂이 있는데 '雇奴'라 기재한 것을 통해 품삯을 받고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문서의 우측 상단에는 동래부의 官印이 찍혀 있고, 좌측 상단에는 行府使의 署押이 보이며, 하단에는 周挾無改印이 확인된다.
경국대전 준호구식에 따르면 준호구에는 문서의 발급일, 발급관부, 考成籍戶口帳內를 쓰고 주호의 거주지를 비롯한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처의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가족사항, 노비사항이 기재되는데. 이 문서도 이러한 내용을 連書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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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박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