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東萊府에서 邑內面 西部 凡魚里 제15통 5호에 거주하는 閑良 林景澓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이 문서의 발급연도는 '道光十年 三月'이라 기재하여 1830년에 작성한 문서로 보이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갑오년(1834)의 호구성적 자료를 고찰한 점, 기유(1789)생인 임경복의 나이가 46세로 기재된 점 등으로 미루어 道光十四年의 四자를 빠트리고 기재하지 않은 것으로 짐작된다.
문서에 의하면 임경복은 나이가 46세이고, 기유(1789)생이며, 본관은 옥야이다. 임경복의 사조를 보면 부친은 學生 林師俊이고, 조부는 通德郞 林盛大이며, 증조부는 학생 林萬澤이다. 외조부는 학생 崔應奎로 본관은 경주이다.
처 鄭氏의 나이는 40세이고, 을묘(1795)생이며, 본관은 동래이다. 동래정씨의 부친은 嘉義大夫 同知中樞府事 鄭采淳이고, 조부는 贈嘉善大夫 漢城府左尹 兼五衛都摠府副摠管 鄭德寧이다. 증조부는 贈通政大夫 工曹參議 鄭爾喬이다. 외조부는 학생 辛大馥으로 본관은 영산이다.
임경복과 동래정씨 사이에는 아들이 1명 있는데, 이름은 林志松이고, 나이는 9세이며, 병술(1826)생이다.
문서의 말미에 '甲午戶口准給者'를 기재하여 갑오년(1834)의 문서와 대조하여 작성된 문서임을 밝히고 있다.
문서에 기재된 노비사항을 보면 여자종 丁春이 있고, 정춘의 남편은 束伍軍 郭順業이다. 곽순업의 소생으로 十月이 있다. 이전 문서인 1831년 임경복의 준호구와 대조했을 때 호의 다른 구성원들은 3년씩 나이가 올라가는 반면 십월은 한살 더 많게 기재되었다.
문서의 우측 상단 발급일 부분에는 동래부의 官印이 찍혀 있고, 좌측 상단에는 行府使의 署押이 보이며, 하단에는 周挾無改印이 확인된다.
임경복이 거주한 동래부 읍내면 서부 범어리는 현재의 행정구역상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일대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