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19년(순조 19) 2월에 東萊府에서 幼學 林師俊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경국대전 준호구식에 따르면 준호구에는 문서의 발급일, 발급관부, 考成籍戶口帳內를 쓰고 주호의 거주지를 비롯한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처의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가족사항, 노비사항이 기재된다. 이 문서도 이러한 내용을 連書하였다.
문서에 따르면 임사준은 林師櫟에서 개명하였고, 邑內面 西部 客達里 제3통 4호에서 처, 아들 내외와 함께 거주하였다. 임사준의 나이는 67세로 계유(1753)생이며, 본관은 옥야이다.
임사준의 사조사항을 살펴보면 부친은 通德郞 林盛大이고, 생부는 學生 林希大이다. 생부가 기재된 것으로 보아 임사준은 임성대의 양자임을 알 수 있다. 조부는 학생 林萬澤이고, 증조부는 折衝將軍 行僉知中樞府事 林一興이다. 외조부는 학생 金善慶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임사준의 처 崔氏는 나이가 70세로 경오(1750)생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경주최씨의 부친은 학생 崔應奎이고, 조부는 학생 崔鍚漢이며, 증조부는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崔東淑이다. 외조부는 학생 玄德潤으로 본관은 영천이다.
아들 林景淳은 나이가 41세이며, 기해(1779)생이다. 며느리 裵氏의 나이는 37세로 계묘(1783)생이다. 이 문서에는 배씨의 본관이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1816년 임사준의 준호구를 통해 배씨의 본관이 김해임을 알 수 있다.
본 문서에 기재된 소유 노비는 3口인데, 모두 다른 지역에서 時居하고 있다.
문서의 말미에 '丙子戶口准給者'를 기재하여 병자년(1816)의 문서와 대조하여 작성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문서의 우측 상단에는 동래부의 官印이 찍혀 있고 좌측 상단에는 行府使의 署押이 보이며, 하단에는 周挾無改印이 확인된다.
임사준이 거주한 동래부 읍내면 서부 객달리는 현재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일대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