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19년(순조 19) 3월에 東萊府에서 閑良 林景胤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경국대전 준호구식에 따르면 준호구에는 문서의 발급일, 발급관부, 考成籍戶口帳內를 쓰고 주호의 거주지를 비롯한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처의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가족사항, 노비사항이 기재된다. 이 문서도 이러한 내용을 連書하였다.
문서에 의하면 임경윤은 邑內面 西部 凡魚里 제13통 제5호에 거주하고 있다.
임경윤은 나이가 31세이고, 기유(1789)생이며, 본관은 옥야이다. 본 문서에는 명시되지 않았으나 1813년 임경철의 준호구에 기재된 내용을 보았을 때, 1813년에서 1819년 사이에 林景澈에서 임경윤으로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
임경윤의 사조를 보면 부친은 幼學 林師俊이고, 조부는 通德郞 林盛大이며, 증조부는 學生 林萬澤이다. 외조부는 학생 崔應奎로 본관은 경주이다.
처 鄭氏의 나이는 25세이고, 을묘(1795)생이며, 본관은 동래이다. 부친은 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 鄭采淳이고, 조부는 贈嘉善大夫 漢城府左尹 兼五衛都摠府副摠管 鄭德寧이며, 증조부는 贈通政大夫 工曹參議 鄭爾喬이다. 외조부는 학생 辛大馥으로 본관은 영산이다.
문서에는 노비 2口가 기재되어 있는데, 그 중 여자종 1구는 도망갔고, 소유한 노비는 새로 들인 여자종 1구뿐이다.
문서의 말미에 '丙子戶口准給者'를 기재하여 병자년(1816)의 문서와 대조하여 작성된 문서임을 밝히고 있다.
문서의 우측 상단에는 동래부의 官印이 찍혀 있고, 좌측 상단에는 行府使의 署押이 보이며, 하단에는 周挾無改印이 확인된다.
임경윤이 거주한 동래부 읍내면 서부 범어리는 현재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일대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