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67년(고종 4) 3월에 東萊府에서 出身 林志松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이 준호구는 경국대전 준호구식을 따르고 있다. 書頭에 문서의 발급일과 발급관청을 쓰고 행을 바꿔 考成籍戶口帳內를 기재하고 참고한 호구장적을 기입한다. 그리고 주호의 거주지를 비롯한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처의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가족사항을 기재한다. 다른 사항은 모두 連書하였으나 노비에 대해서는 행을 달리하여 기재하였다.
문서에 의하면 임지송의 나이는 42세로 병술(1826)생이며, 본관은 옥야이다. 거주지는 邑內面 西部 校洞里 제8통 5호로 이 지역은 오늘날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일대로 추정된다.
연관문서와의 비교를 통해 임지송의 직역이 閑良에서 출신으로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임지송의 사조를 보면 부친은 學生 林景澓이고, 조부는 학생 林師俊이며, 증조부는 학생 林盛大이다. 외조부는 嘉義大夫 行同知中樞府事 鄭采淳이다. 외조부의 본관을 기재하지 않고 주호의 모친 사항에 본관을 기재하였다.
모시고 있는 모친 鄭氏는 나이가 73세이고, 을묘(1795)생이며, 본관은 동래이다.
처 李氏는 나이가 44세이고, 갑신(1824)생이며, 본관은 안산이다. 안산이씨의 부친은 학생 李學賢이고, 조부는 학생 李仁興이며, 증조부는 通政大夫 李德年이다. 외조부는 학생 李重模로 본관은 경주이다.
문서에는 2口가 기재되어 있는데, 남자종은 仲文이고, 여자종은 姢愛이다.
문서의 말미에 '甲子戶口准給者'라 기재하여 1864년의 문서와 대조하여 작성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문서의 우측 상단에는 동래부의 官印이 찍혀 있고, 좌측 중앙에는 行府使의 署押이 보이며, 하단에는 周挾無改印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