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932년 11월 3일에 琴瑞淵이 사돈에게 보낸 편지이다.
간찰은 書簡, 書信, 書札, 簡牘 등으로 부르며, 고문서 형태로 전해진다. 문집에 수록된 간찰은 '書'로 분류하여 수록하기도 하는데, '서'란 고문서 형태의 간찰이 문집에 수록된 것을 말한다. 간찰은 일반적으로 皮封과 내용으로 구성되고, 내용은 다시 本紙와 別紙로 구별할 수 있다. 흔히 간찰이라고 하는 것은 편지의 본문인 본지를 의미한다. 小紙, 胎紙 등으로도 불리는 별지에는 본지에 적기 어려운 구체적인 내용이나 보내는 선물, 은밀한 부탁이나 청탁 등이 기록된다.
간찰의 내용은 書頭, 候問, 自叙, 述事, 結尾로 나뉜다. 서두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안부 인사를 적고, 후문에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다. 자서에는 간찰을 보내는 사람 본인의 근황을 서술하며, 술사에서는 간찰을 보낸 이유를 적고, 결미는 간찰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간단히 끝맺는 말과 날짜, 성명, 올림[재배(再拜)] 등의 항목을 순서대로 적는다.
문서의 작성연도가 임신년으로 기재하였는데, 1939년 연관문서를 통해 임신년은 1932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금서연이 자신을 査弟라 하였는데, 사제는 사돈사이에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기 때문에 수신인과는 사돈지간임을 알 수 있다.
금서연은 먼저 지날 달 보름 즈음에 편지를 받고, 이틀 후 致雲 형이 지나가다 들려 편지를 보낼 기회가 있었으나 본인이 오랫동안 약을 먹고 있어 마음이 편하지 않고, 정신이 어수선했기 때문에 편지를 쓰지 못했다고 하며 이 책임은 아픈 자신에게 있어 죄송하다고 하였다.
이어 사돈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였는데 사돈의 어머니, 아들, 집안사람 모두 태평한지 물은 후 며늘아기의 기침이 나아졌다고 하니 매우 다행이지만 자신은 밤까지 근심하며 '順'이라는 한 글자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다.
먼저 금서연은 사돈에게 며늘아기가 출산하게 되면 바로 인편을 통해 소식을 전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어서 자신이 지난 9월 20일부터 10월 25일까지 안동에서 지은 약 60첩을 다 복용하였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입이 쓴 증세는 효력이 있는듯하나 가슴이 울적하고 손이 떨리며, 쓴침을 토하고 붓는 병증은 발병이 오락가락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자신은 다시 안동을 가려고 하는데 혹시 좋은 약재를 얻을 수 있는지 물었다. 또한 상주에 거주하는 아이의 소식이 끊겨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추신으로 산청의 곽 의원이 현재 살아있는지 몰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뜻을 접었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