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929년 3월 6일 琴瑞淵이 사돈에게 답장으로 보낸 간찰이다.
간찰은 書簡, 書信, 書札, 簡牘 등으로 부르며, 고문서 형태로 전해진다. 문집에 수록된 간찰은 '書'로 분류하여 수록하기도 하는데, '서'란 고문서 형태의 간찰이 문집에 수록된 것을 말한다. 간찰은 일반적으로 皮封과 내용으로 구성되고, 내용은 다시 本紙와 別紙로 구별할 수 있다. 흔히 간찰이라고 하는 것은 편지의 본문인 본지를 의미한다. 小紙, 胎紙 등으로도 불리는 별지에는 본지에 적기 어려운 구체적인 내용이나 보내는 선물, 은밀한 부탁이나 청탁 등이 기록된다.
간찰의 내용은 書頭, 候問, 自叙, 述事, 結尾로 나뉜다. 서두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안부 인사를 적고, 후문에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다. 자서에는 간찰을 보내는 사람 본인의 근황을 서술하며, 술사에서는 간찰을 보낸 이유를 적고, 결미는 간찰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간단히 끝맺는 말과 날짜, 성명, 올림[재배(再拜)] 등의 항목을 순서대로 적는다.
문서에는 작성연도를 '己巳'로 기재하였는데 1939년 연관문서를 통해 기사년은 1929년도에 작성하였다는 것과 자신을 '査弟'라고 지칭한 점에서 수신인과는 사돈지간임을 알 수 있다.
내용을 보면 사돈을 반년 만에 봐서 장막에서 하룻밤 이야기를 나눴음에도 아직 다 털어놓지 못해 아쉬웠는데, 아이가 돌아와서 편지를 받아 급하게 읽으니 고마운 마음이 든다고 하였다. 이어 편지를 통해 사돈의 집안 가족이 모두 잘 지내고, 며느리도 잘 지낸다는 소식을 듣게 되니 이보다 더 큰 소식이 무엇이겠냐며 며느리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고 하였다. 자신은 숙부가 큰 탈은 면하였지만 어린 애가 모두 홍역을 앓고 있어 걱정된다는 근황을 전하였다.
금서연은 자식이 끈기가 없고, 늦게 공부하는 것도 하지 못해 조급하게 성취하는 것을 자신의 기량으로 삼아 길거리 웃음거리가 많으리라 생각하는데, 사돈께서는 도리어 지나치게 칭찬하는 등 너무 편애하신 것 같다고 하였다. 이어 이바지 음식에 대해서는 보내준 이바지 음식이 너무 많다고 하며, 보내주신 마음은 고마우나 보답하는 쪽의 것이 모양이 없어 부끄럽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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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현,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연구,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백낙천, 조선후기 한글간찰의 형식과 내용, 한말연구18, 한말연구학회, 2006
전병용, 간찰의 안부인사에 대한 유형 연구, 동양고전연구 57, 동양고전학회, 2014
집필자 : 신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