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광무 1)에 春川府에서西上面 盤松里에 거주하는 幼學 李在鳳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춘천 용인이씨 가문의 문서는 총 22통의 준호구가 현존하고 있다. 첫 번째 문서는 1795년에 작성되었고 마지막 문서인 22번째 문서는 102년 뒤인 1897년에 작성되었다. 해당 문서는 21번째 문서가 작성된 이후 9년 뒤에 작성된 마지막 문서이다.
문서에 따르면 이재봉은 1845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53세였고 본관은 용인이다. 이재봉의 父는 成均生員 李重祜이고 生父는 學生 李暻祜이다. 이 부분을 통해 이재봉은 이중호의 양자였으며 양부 이중호가 1888년부터 1897년 사이에 사망하여 호를 물려받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祖父는 學生 李普喆이고 曾祖父는 學生 李宜格이다. 外祖父는 學生 朴宗載이고 본관은 반남이다.
처 文化柳氏는 1866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32세였다. 1888년 준호구에 의하면 이재봉의 전처 昌寧姓氏는 사망하였는데 전처 사망 후 문화류씨와 재혼한 것으로 보인다. 문화류씨의 부는 幼學 柳暉運이고 조부는 學生 柳寅棟이다. 증조부는 學生 柳明漸이고 외조부는 學生 朴喜祜이다. 외조부의 본관은 기재되지 않았다.
가족으로는 아들 幼學 李琦鉉(30세), 며느리 平海黃氏, 아우 幼學 李在萬(46세), 弟嫂 平海黃氏, 조카 幼學 李寶鉉(29세), 조카며느리 昌寧成氏가 있다. 여기에 여성들의 나이는 기재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한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소유 노비는 奴 1口, 婢 1구로 총 2구가 있었다. 1888년 준호구와 비교했을 때 총 5口의 노비 중 2口만 남았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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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박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