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5년 이익호(李益祜)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45.4211-20160501.20150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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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춘천부(春川府)
수취 : 이익호(李益祜)
· 작성지역 춘천부
· 작성시기 道光二十五年(1845)
· 형태사항 58.8 X 49.1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7.0*7.0, 春川府印)
1 (흑색, 장방형, 13.0*4.0, 周挾改印)
· 원소장처 춘천 용인이씨
· 현소장처 춘천 김현식

연결자료

안내정보

1845년 이익호(李益祜)춘천부(春川府)로부터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이익호춘천부 서상면(西上面) 반송리(盤松里)에 거주하였고 문서를 발급받을 당시의 나이는 27세였으며 본관은 용인이다. 처(妻) 반남박씨(潘南朴氏)는 사망하였다.

상세정보

1845년(헌종 11)春川府에서 西上面 盤松里에 거주하는 幼學 李益祜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춘천 용인이씨 가문의 문서로는 총 22통의 준호구가 현존하고 있다. 첫 번째 문서는 1795년에 작성되었고 마지막 문서인 22번째 문서는 102년 뒤인 1897년에 작성되었다. 해당 문서는 열세 번째 문서가 작성된 이후 2년 뒤에 작성된 열네 번째 문서이다.
준호구의 형식은 발급일자와 발급관서를 가장 먼저 쓰고 사조, 가족구성원, 소유 노비에 대해 連書한다. 준호구와 비슷한 성격의 문서로는 호구단자가 있는데 호구단자의 기재 방식은 別行하여 列書하는 것이다. 18세기에 이르면 준호구의 기재 방식이 호구단자와 혼재되는 양상을 보인다. 해당 문서도 사조와 가족구성원에 대해서 열서하였다.
또한 준호구에는 붉은 인장과 周挾改印을 각각 다른 위치에 찍는데 해당 문서에는 같은 위치에 겹쳐 찍혔다.
문서에 따르면 이익호1819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27세였고 본관은 용인이다. 1843년의 준호구에서 이익호李榮祜로 개명했다고 하였으나 해당 문서에는 이익호로 기재되고 있다. 父는 學生 李普喆이고 生父는 學生 李普一이다. 이익호이보철의 양자였음을 알 수 있다. 祖父는 學生 李宜格이고 曾祖父는 學生 李景春이다. 外祖父는 贈 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 崔溪이고 본관은 해주이다.
潘南朴氏1818년생인데 사망한 것으로 기재되었다. 1843년에서 1845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는 幼學 朴宗載이고 조부는 成均進士 朴淇源이다. 증조부는 學生 朴師壹이고 외조부는 幼學 成時黙이며 본관은 창녕이다.
1843년의 준호구에는 노비가 5口 있는 것으로 기재되었으나 해당 문서에는 노비에 대한 사항이 기재되어 있지 않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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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박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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