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3년(고종 10)에 春川府에서 西上面 盤松里에 거주하는 幼學 李泰祜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춘천의 용인이씨 가문의 문서는 총 22통의 준호구가 현존하고 있다. 첫 번째 문서는 1795년에 작성되었고 마지막 문서인 22번째 문서는 102년 뒤인 1897년에 작성되었다. 해당 문서는 열일곱 번째 문서가 작성된 이후 6년 뒤에 작성된 열여덟 번째 문서이다.
문서에 따르면 이태호는 1819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55세였고 본관은 용인이다. 父는 學生 李普喆이고 生父는 學生 李普一이다. 생부가 기재된 것을 보아 이태호는 입양된 양자였음을 알 수 있다. 祖父는 學生 李宜格이고 曾祖父는 學生 李景春이다. 外祖父는 贈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 崔溪이고 본관은 해주이다.
妻 淸州韓氏는 1823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51세였다. 청주한씨는 이태호의 전처 반남박씨가 사망한 이후로 재혼하였다. 청주한씨의 부는 學生 韓用泰이고 조부는 學生 韓元裕이다. 증조부는 學生 韓說謩이고 외조부는 學生 宋文周이며 본관은 진천이다.
이외에 아들 幼學 李在鳳(29세), 며느리 昌寧成氏(30세), 조카 幼學 李在馨(24세), 조카며느리 昌寧成氏(26세), 조카 幼學 李在萬(22세), 조카며느리 平海黃氏(26세)와도 함께 거주하였다. 조카 이재형은 1867년 준호구에 기재된 조카 李在應이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
소유 노비는 婢 1口가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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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박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