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3년 이태호(李泰祜)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73.4211-20160501.20150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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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춘천부(春川府)
수취 : 이태호(李泰祜)
· 작성지역 춘천부
· 작성시기 同治十二年(1873)
· 형태사항 47.5 X 51.2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8.0*8.0, 春川府印)
1 (흑색, 장방형, 13.0*4.0, 周挾改印)
· 원소장처 춘천 용인이씨
· 현소장처 춘천 김현식

연결자료

안내정보

1873년 이태호(李泰祜)춘천부(春川府)로부터 발급받은 준호구(準戶口)이다. 이태호춘천부 서상면(西上面) 반송리(盤松里)에 거주하였고 문서를 발급받을 당시의 나이는 55세였으며 본관은 용인이다. 처(妻) 청주한씨(淸州韓氏, 51세), 아들 이재봉(李在鳳, 29세), 며느리 창녕성씨(昌寧成氏, 30세), 조카 이재형(李在馨, 24세), 조카며느리 창녕성씨(昌寧成氏, 26세), 조카 이재만(李在萬, 22세), 조카며느리 평해황씨(平海黃氏, 26세)와 함께 거주하였다.
소유한 노비는 비(婢) 1구(口)가 있었다.

상세정보

1873년(고종 10)春川府에서 西上面 盤松里에 거주하는 幼學 李泰祜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춘천용인이씨 가문의 문서는 총 22통의 준호구가 현존하고 있다. 첫 번째 문서는 1795년에 작성되었고 마지막 문서인 22번째 문서는 102년 뒤인 1897년에 작성되었다. 해당 문서는 열일곱 번째 문서가 작성된 이후 6년 뒤에 작성된 열여덟 번째 문서이다.
문서에 따르면 이태호1819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55세였고 본관은 용인이다. 父는 學生 李普喆이고 生父는 學生 李普一이다. 생부가 기재된 것을 보아 이태호는 입양된 양자였음을 알 수 있다. 祖父는 學生 李宜格이고 曾祖父는 學生 李景春이다. 外祖父는 贈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 崔溪이고 본관은 해주이다.
淸州韓氏1823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51세였다. 청주한씨이태호의 전처 반남박씨가 사망한 이후로 재혼하였다. 청주한씨의 부는 學生 韓用泰이고 조부는 學生 韓元裕이다. 증조부는 學生 韓說謩이고 외조부는 學生 宋文周이며 본관은 진천이다.
이외에 아들 幼學 李在鳳(29세), 며느리 昌寧成氏(30세), 조카 幼學 李在馨(24세), 조카며느리 昌寧成氏(26세), 조카 幼學 李在萬(22세), 조카며느리 平海黃氏(26세)와도 함께 거주하였다. 조카 이재형1867년 준호구에 기재된 조카 李在應이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
소유 노비는 婢 1口가 있었다.
참고문헌
권내현,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역사비평사,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박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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