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98년에 작성된 幼學 崔在寬의 준호구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최재관 가문 문서로 24건의 호구문서가 있다. 이를 주호별로 구분하면 현조부 崔日明 4건, 고조부 崔鎭岌 6건, 조부 崔秉珪 5건, 부친 崔允大 3건, 최재관 6건이다. 이 준호구는 최재관이 주호로 기재된 마지막 문서이다.
문서에 따르면 최재관의 당시 나이는 81세이고, 생년은 무인년(1818)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주호의 부친은 學生 최윤대이고, 조부는 학생 최병규이다. 증조부는 학생 崔海量이며, 외조부는 본관이 연일인 학생 鄭洧濟이다.
가족으로 첫째 아들 崔養浩와 며느리 橫城趙氏, 둘째 아들 崔養心과 며느리 加平簡氏, 첫째 손자 崔匡夏와 손자 며느리 平壤趙氏, 둘째 손자 崔鼎夏와 며느리 韓山李氏, 첫째 제수 密陽朴氏, 둘째 아우 崔在完과 둘째 제수 횡성조씨가 있다.
주호의 처는 원씨인데, 이 문서에서는 사망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연관문서를 통해 처 원씨의 생년은 기묘년(1819)이고, 본관은 원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최재관의 첫째 아들인 최양호는 56세이고, 계묘(1843)생이다. 첫째 며느리 횡성조씨는 당시 52세로, 생년은 정미년(1847)이다. 둘째 아들 최양심의 나이는 49세이고, 경술(1850)생이며, 둘째 며느리 가평간씨는 30세로, 기사(1869)생이다. 1898년 이전에 작성된 문서에는 둘째 아들의 이름을 崔養源으로 기재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최양심은 최양원에서 최양심으로 개명한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손자 최광하의 나이는 당시 32세이고, 정묘(1867)생이다. 첫째 손자 며느리 평양조씨는 병인(1866)생으로, 나이는 33세이다. 둘째 손자 최정하는 29세로, 생년은 경오년(1870)이며, 둘째 손자 며느리 한산이씨는 33세이다.
제수 밀양박씨의 나이는 71세이고, 생년은 무자년(1828)이다. 박씨의 남편은 주호의 첫째 동생인 崔在安으로, 문서에는 사망하였다고 기재되었다. 연관문서를 통해 최재안은 1888년에서 1891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호의 둘째 아우 최재완은 신묘(1831)생으로, 나이는 68세이다. 둘째 제수 횡성조씨는 59세이고, 경자(1840)생이다.
최재관과 그의 가족이 살았던 곳은 原州牧 古毛谷面 四里 鴨谷村인데, 이 지역은 현재 행정구역상 횡성군 서원면 압곡리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