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85년에 原州官에서 幼學 崔在寬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최재관의 당시 나이는 68세이고, 생년은 무인년(1818)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주호의 부친은 學生 崔允大이고, 조부는 학생 崔秉珪이다. 증조부는 학생 崔海量이며, 외조부는 본관이 연일인 학생 鄭洧濟이다.
가족으로는 첫째 아우 崔在安과 제수 密陽朴氏, 둘째 아우 崔在完과 제수 橫城趙氏, 첫째 아들 崔養浩와 며느리 橫城趙氏, 둘째 아들 崔養源과 며느리 加平簡氏, 손자 崔光夏와 손자 며느리 平壤趙氏가 있다. 주호의 처는 원씨인데, 이 문서에서는 사망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연관문서를 통해 처 원씨의 생년은 기묘년(1819)이고, 본관은 원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아우 최재안의 나이는 59세이고, 정해(1827)생이다. 첫째 제수 밀양박씨는 58세이며, 생년은 무자년(1828)이다. 둘째 아우 최재완은 신묘(1831)생으로, 나이는 55세이다. 둘째 제수 횡성조씨는 46세이고, 경자(1840)생이다.
첫째 아들 최양호는 43세이고, 계묘(1843)생이다. 첫째 며느리 횡성조씨는 당시 39세로, 생년은 정미년(1847)이다. 둘째 아들 최양원의 나이는 36세이고, 경술(1850)생이며, 둘째 며느리 가평간씨는 17세로, 기사(1869)생이다. 연관문서인 1879년 최재관 준호구를 살펴보면 최양원의 처는 생년이 신해년(1851)인 原州元氏로 기재되어 있다. 이를 통해 최양원은 전처 원주원씨가 사망하여 가평간씨와 재혼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손자 최광하의 나이는 당시 19세이고, 정묘(1867)생이다. 손자 며느리 평양조씨는 병인(1866)생으로, 나이는 20세이다.
주호와 그의 가족이 살았던 곳은 原州牧 古毛谷面 四里 鴨谷村으로, 이 지역은 현재 행정구역상 횡성군 서원면 압곡리에 해당한다.
소유한 노비는 모두 10口로, 남자종 5구와 여자종 5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