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16년에 原州官에서 幼學 崔秉珪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최병규 가문 문서로 24건의 호구문서가 있다. 이를 주호별로 구분하면 증조부 崔日明 4건, 조부 崔鎭岌 6건, 최병규 5건, 아들 崔允大 3건, 손자 崔在寬 6건이다. 이 준호구는 최병규가 주호로 기재된 첫 번째 문서이다. 연관문서를 살펴보면 최병규의 부친 崔海量은 1801년에서 1807년 사이에 사망하였고, 전 주호는 조부 최진급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조부가 1807년에서 1816년 무렵에 故人이 되어, 최병규가 대를 이어 주호가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문서가 작성될 당시 최병규의 나이는 49세이고, 생년은 무자년(1768)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거주지는 원주목 古毛谷面 鴨谷村으로, 이 지역은 현재 행정구역상 횡성군 서원면 압곡리에 해당한다.
주호의 사조를 살펴보면 부친은 學生 최해량이고, 조부는 학생 최진급이다. 증조부는 通德郞 최일명이며, 외조부는 본관이 전주인 학생 李鼎根이다.
가족으로는 첫째 아들 崔大顯과 첫째 며느리 延日鄭氏, 둘째 아들 崔泰顯과 둘째 며느리 昌寧曺氏, 첫째 아우 崔秉瑞와 제수 原州元氏, 둘째 아우 崔秉玖와 제수 原州元氏, 셋째 아우 崔秉瑜와 제수 密陽朴氏가 있다.
문서에는 최병규의 처가 사망한 사실을 기재하고 있는데, 연관문서를 통해 주호의 처는 생년이 병술년(1766)인 平壤趙氏이고, 조씨는 1807년에서 1816년 사이에 사망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첫째 아들 최대현의 나이는 21세이고, 병진(1796)생이다. 첫째 며느리 연일정씨는 25세이며, 생년은 임자년(1792)이다. 둘째 아들 최태현은 19세이고, 무오(1798)생이다. 둘째 며느리 창녕조씨는 23세 갑인(1794)생이다.
첫째 아우 최병서는 43세이고, 갑오(1774)생이다. 제수 원주원씨는 31세이며, 생년은 병오년(1786)이다. 최병서의 전처는 생년이 갑오년(1774)인 원주원씨로, 전처는 1807년에서 1816년 사이에 사망하였다. 이 문서에 기재된 원주원씨는 최병서의 후처이다.
둘째 아우 병구는 38세이고, 기해(1779)생이다. 최병구의 처 원주원씨는 당시 35세이며, 생년은 임인년(1782)이다.
셋째 아우 최병유는 36세로, 신축(1781)생이고, 제수 밀양박씨는 을사(1785)생으로, 나이는 32세이다.
소유한 노비는 모두 20口로, 남자종 8구와 여자종 12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