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5년 최일명(崔日明)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765.4213-20180501.2017000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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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원주관(原州官)
수취 : 최일명(崔日明)
· 작성지역 원주목
· 작성시기 乾隆三十年(1765)
· 형태사항 55.0 X 50.0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6.0*6.0, 原州官印)
1 (흑색, 장방형, 14.1*5.5, 周挾改印)
· 원소장처 원주 강릉최씨
· 현소장처 원주역사박물관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765년에 작성된 유학(幼學) 최일명(崔日明)의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최일명의 당시 나이는 32세이고, 생년은 갑신년(1704)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가족으로는 처 청송심씨(靑松沈氏), 첫째 아들 최진급(崔鎭岌)과 첫째 며느리 오씨(吳氏), 둘째 아들 최진억(崔鎭嶷)과 둘째 며느리 진씨(陳氏)가 있다.
주호와 그의 가족이 살았던 곳은 원주목(原州牧) 호매곡면(好梅谷面) 일리(一里) 호매곡(好梅谷)으로, 이 지역은 현재 행정구역상 원주시 호저면 주산리 일대에 해당한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765년原州官에서 幼學 崔日明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최일명의 나이는 62세이고, 생년은 갑신년(1704)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거주지는 原州牧 好梅谷面 一里 好梅谷으로, 이 지역은 현재 행정구역상 원주시 호저면 주산리 일대에 해당한다.
주소의 사조를 살펴보면 부친은 通德郞 崔道煋이고, 조부는 折衝將軍 行龍驤衝副護軍 崔東相이다. 증조부는 成均生員 崔文潑이며, 외조부는 出身 元潤文으로 본관은 원주이다.
가족으로는 처 沈氏, 첫째 아들 崔鎭岌과 첫째 며느리 吳氏, 둘째 아들 崔鎭嶷과 둘째 며느리 陳氏가 있다. 처 심씨계미(1703)생으로 당시 나이는 63세이고, 본관은 청송이다. 문서에는 61세로 기재되었는데, 이는 단순 오기로 보인다. 청송심씨의 부친은 學生 沈師晢이고, 조부는 秉節校尉 行龍驤衛副司果 沈潤昌이며, 증조부는 학생 沈瑾이다. 외조부는 본관이 강릉학생 崔萬錫이다.
첫째 아들 최진급은 41세이고, 을사(1725)생이다. 며느리 오씨는 38세이며, 생년은 무신년(1728)이다. 둘째 아들 최진억의 나이는 31세이고, 을묘(1735)생이다. 둘째 며느리 진씨는 28세이며, 생년은 기미년(1739)이다.
소유한 노비는 여자종 道深과 남자종 富許里가 있다. 남자종 {沙叱}寺里무인년에 도망갔다.
문서를 살펴보면 좌측 상단에 '行判官'이 적혀 있고, 그 아래에는 원주판관의 서압이 있다. 1760년(영조 36) 강원도관찰사원주목사를 겸임하게 된 이후 기존에 정3품이 임명되었던 원주목사종5품 판관이 맡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 문서에 '行判官'을 쓰고 원주판관의 서압을 남겼음을 알 수 있다. 서압 아래로는 風憲, 里正, 監考가 적혀있는데, 문서에는 직임만 기재되어 있으며, 그 위로 官印과 周挾改印이 겹쳐져 찍혀있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최일명 가문 문서로 24건의 호구문서가 있다. 이를 주호별로 구분하면 최일명 4건, 아들 최진급 6건, 증손 崔秉珪 5건, 현손 崔允大 3건, 내손 崔在寬 6건이다.
참고문헌
문현주, 조선후기 戶口文書의 작성 과정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3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조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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