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07년에 原州官에서 幼學 崔鎭岌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최진급 가문 문서로 24건의 호구문서가 있다. 이를 주호별로 구분하면 부친 崔日明 4건, 최진급 6건, 손자 崔秉珪 5건, 증손 崔允大 3건, 현손 崔在寬 6건이다. 이 준호구는 최진급이 주호로 기재된 마지막 문서이다.
문서가 작성될 당시 최진급의 나이는 83세이고, 생년은 을사년(1725)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주호의 사조를 살펴보면 부친은 通德郞 최일명이고, 조부는 통덕랑 崔道煋이다. 증조부는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崔東相이며, 외조부는 學生 沈師哲로 본관은 청송이다.
최진급의 처는 興陽吳氏로 이 문서에서 오씨가 사망한 사실이 적혀있다. 연관문서를 살펴보면 흥양오씨는 1789년에서 1795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호구문서에는 사망한 처의 사조사항이 기재되지 않는데, 이 준호구에는 흥양오씨의 사조가 기록되었다. 오씨의 부친은 학생 吳時慶이고, 조부는 통덕랑 吳相周이며, 증조부는 典牲署主簿 吳鳴邦이다. 외조부는 본관이 안동인 학생 權益海이다.
가족으로는 장손 崔秉珪와 손자 며느리 平壤趙氏, 손자 崔秉瑞, 손자 崔秉玖와 손자 며느리 原州元氏, 손자 崔秉瑜와 손자 며느리 密陽朴氏, 둘째 아들 崔海旻, 손자 崔秉璉과 손자 며느리 靑松沈氏, 손자 崔秉璿과 손자 며느리 원주원씨, 셋째 아들 崔海鼎과 셋째 며느리 漢陽趙氏, 손자 崔秉瑗과 손자 며느리 安東權氏, 손자 崔秉瑛과 손자 며느리 光山金氏가 있다.
주호의 첫째 아들은 崔海量이고, 첫째 며느리는 全州李氏인데, 문서에 사망한 사실을 기재하였다. 손자 최병규의 나이는 40세이고, 무자(1768)생이다. 손자 며느리 평양조씨는 42세이며, 생년은 병술년(1766)이다. 손자 최병서는 34세이고, 갑오(1774)생이다. 최병서의 처 원주원씨는 사망하였다. 손자 최병구는 29세 기해(1779)생이고, 손자 며느리 원주원씨는 26세 임인(1782)생이다. 손자 최병유는 27세로 생년은 신축년(1781)이며, 손자 며느리 밀양박씨는 23세이고, 을사(1785)생이다.
현전하는 연관문서 중 이 준호구의 이전 문서는 1801년에 작성된 최진급의 준호구이다. 1801년 준호구를 통해 주호의 장남 최해량, 최해량의 처 전주이씨, 손자 최병서의 처 원주원씨는 그 당시 살아있었고, 손자 최병구와 최병유의 처는 전주이씨와 順興安氏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이 준호구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재된 이들은 1801년에서 1807년 사이에 故人이 된 것으로 보이고, 최병구와 최병유도 이 시기에 재혼한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아들 최해민의 나이는 54세이고, 갑술(1754)생이다. 최해민의 처는 생년이 신묘년(1771)인 德水李氏인데, 이 문서에서 사망한 사실을 기재하고 있다. 덕수이씨는 1796년에서 1798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최해민과 덕수이씨의 아들인 최병연은 당시 29세이고, 생년은 기해년(1779)이다. 최병연의 처 청송심씨의 나이는 33세이고, 을미(1775)생이다. 최해민의 둘째 아들 최병선은 20세이고, 무신(1788)생이다. 최병선의 처 원주원씨는 25세로 생년은 계묘년(1783)이다.
셋째 아들 최해정은 45세로, 계미(1763)생이고, 셋째 며느리 한양조씨는 46세이며, 생년은 임오년(1762)이다. 최해정의 아들 최병원은 25세이고, 계묘(1783)생이다. 최병원의 처 안동권씨는 23세이며, 생년은 을사년(1785)이다. 둘째 아들 최병영은 20세 무신(1788)생이고, 최병영의 처 광산김씨는 21세 정미(1787)생이다.
주호와 그의 가족이 살았던 곳은 原州牧 古毛谷面 四里 鴨谷村으로, 이 지역은 현재 행정구역상 횡성군 서원면 압곡리에 해당한다.
소유한 노비는 모두 17口로, 남자종 6구와 여자종 11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