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9년 최일명(崔日明) 호적단자(戶籍單子)

ㆍ자료UCI: KNU+GWKSMC+KSM-XD.1759.4213-20180501.2017000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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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최일명(崔日明)
수취 : 원주목(原州牧)
· 작성지역 원주목
· 작성시기 乾隆二十四年(1759)
· 형태사항 55.0 X 33.0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7.6*7.6, 原州牧印)
1 (흑색, 장방형, 14.3*5.7, 周挾改印)
· 원소장처 원주 강릉최씨
· 현소장처 원주역사박물관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759년에 작성된 유학(幼學) 최일명(崔日明)의 호적단자이다.
문서에 따르면 최일명의 당시 나이는 56세이고, 생년은 갑신년(1704)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가족으로는 처 청송심씨(靑松沈氏), 첫째 아들 최진급(崔鎭岌), 며느리 오씨(吳氏), 둘째 아들 최진억(崔鎭嶷)이 있다.
문서에는 두 아들들의 개명 사실이 적혀있지 않지만 연관문서와의 비교를 통해 첫째 아들은 최진구(崔鎭九)에서 최진급으로, 둘째 아들은 최진조(崔鎭祚)에서 최진억으로 이름을 바꾼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호와 그의 가족이 살았던 곳은 원주목(原州牧) 호매곡면(好梅谷面) 일리(一里) 호매곡(好梅谷)으로, 이 지역은 현재 행정구역상 원주시 호저면 주산리 일대에 해당한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759년에 작성된 幼學 崔日明의 호적단자이다.
문서의 첫 행에 戶籍單子로 기재되어 있지만, 서술방식이 連書이고, 官印, 署押, 周挾改印 등을 통해 준호구적인 효력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서가 작성될 당시 최일명의 나이는 56세이고, 갑신(1704)생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주호의 부친은 通德郞 崔道煋이고, 조부는 折衝將軍 行龍驤衝副護軍 崔東相이다. 증조부는 成均生員 崔文潑이며, 외조부는 出身 元潤文으로 본관은 원주이다.
가족으로는 처 沈氏, 첫째 아들 崔鎭岌, 며느리 吳氏, 둘째 아들 崔鎭嶷이 있다. 심씨계미(1703)생으로, 나이는 57세이고, 본관은 청송이다. 청송심씨의 부친은 學生 沈師晢이고, 조부는 秉節校尉 行龍驤衛副司果 沈潤昌이며, 증조부는 학생 沈瑾이다. 외조부는 본관이 강릉학생 崔萬錫이다.
첫째 아들 최진급은 35세이고, 을사(1725)생이다. 며느리 오씨는 32세이며, 생년은 무신년(1728)이다. 둘째 아들 최진억의 나이는 25세이고, 을묘(1735)생이다. 이전 식년인 1756년 최일명 준호구에는 첫째 아들의 이름을 崔鎭九로, 둘째 아들은 崔鎭祚라고 기재하였다. 이 준호구에서는 개명한 사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연관문서와의 비교를 통해 최일명의 두 아들들은 이름을 바꾸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주호와 그의 가족이 살았던 곳은 原州牧 好梅谷面 一里 好梅谷으로, 이 지역은 현재 행정구역상 원주시 호저면 주산리 일대에 해당한다.
소유한 노비는 여자종 道深이 있다. 도심의 나이는 35세이고, 모친은 사노 海尙이며, 부친의 이름은 알지 못한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최일명 가문 문서로 24건의 호구문서가 있다. 이를 주호별로 구분하면 최일명 4건, 아들 최진급 6건, 증손 崔秉珪 5건, 현손 崔允大 3건, 내손 崔在寬 6건이다.
참고문헌
문현주, 조선후기 戶口文書의 작성 과정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3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조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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