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49년에 原州官에서 幼學 崔允大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최윤대 가문 문서로 24건의 호구문서가 있다. 이를 주호별로 구분하면 고조부 崔日明 4건, 증조부 崔鎭岌 6건, 부친 崔秉珪 5건, 최윤대 3건, 아들 崔在寬 6건이다. 이 준호구는 최윤대가 주호로 기재된 마지막 문서이다.
문서에 따르면 최윤대의 당시 나이는 54세이고, 생년은 병진년(1796)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거주지는 原州牧 古毛谷面 四里 鴨谷村으로, 이 지역은 현재 행정구역상 횡성군 서원면 압곡리에 해당한다.
주호의 부친은 學生 최병규이고, 조부는 학생 崔海量이다. 증조부는 학생 최진급이며, 외조부는 본관이 평양인 通德郞 趙時恱이다.
가족으로는 처 鄭氏, 첫째 아들 최재관과 첫째 며느리 原州元氏, 둘째 아들 崔在安과 둘째 며느리 密陽朴氏, 셋째 아들 童蒙 崔在完, 아우 崔允升과 제수 昌寧曺氏가 있다.
처 정씨는 임자(1792)생이고, 나이는 58세이며, 본관은 연일이다. 연일정씨의 부친은 학생 鄭洧濟이고, 조부는 학생 鄭鍍이며, 증조부는 통덕랑 鄭纉興이다. 외조부는 嘉善大夫 行同知中樞府事 徐壹修로 본관은 달성이다.
첫째 아들 최재관의 나이는 32세이고, 무인(1818)생이다. 며느리 원주원씨는 기묘(1819)생으로 당시 나이는 31세이다. 둘째 아들 최재안은 정해(1827)생으로, 나이는 23세이다. 둘째 며느리 밀양박씨는 22세이고, 무자(1828)생이다. 셋째 아들 최재완은 19세이며, 생년은 신묘년(1831)이다.
아우 최윤승은 52세이고, 무오(1798)생이다. 제수 창녕조씨의 나이는 56세로 생년은 갑인년(1794)이다.
소유한 노비는 모두 8口로, 남자종 6구와 여자종 2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