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94년에 原州官에서 幼學 崔在寬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가 작성될 당시 최재관의 나이는 77세이고, 생년은 무인년(1818)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주호의 부친은 學生 崔允大이고, 조부는 학생 崔秉珪이다. 증조부는 학생 崔海量이며, 외조부는 본관이 연일인 학생 鄭洧濟이다.
가족구성원은 모두 21명으로 첫째 아들 崔養浩와 며느리 橫城趙氏, 둘째 아들 崔養源과 며느리 加平簡氏, 첫째 손자 崔光夏와 손자 며느리 平壤趙氏, 둘째 손자 崔鼎夏와 며느리 韓山李氏, 첫째 제수 密陽朴氏, 박씨의 첫째 아들 崔養志와 며느리 鎭川宋氏, 둘째 아들 崔養哲과 며느리 平壤趙氏, 셋째 아들 崔養性과 며느리 淸州韓氏, 넷째 아들 崔養漢과 며느리 全州李氏, 둘째 아우 崔在完과 둘째 제수 횡성조씨, 최재완의 아들 崔養和와 며느리 延日鄭氏가 있다.
주호의 처는 원씨인데, 이 문서에서는 사망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연관문서를 통해 처 원씨의 생년은 기묘년(1819)이고, 본관은 원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최재관의 첫째 아들인 최양호는 52세이고, 계묘(1843)생이다. 첫째 며느리 횡성조씨는 당시 48세로, 생년은 정미년(1847)이다. 둘째 아들 최양원의 나이는 45세이고, 경술(1850)생이며, 둘째 며느리 가평간씨는 26세로, 기사(1869)생이다.
첫째 손자 최광하의 나이는 당시 28세이고, 정묘(1867)생이다. 첫째 손자 며느리 평양조씨는 병인(1866)생으로, 나이는 29세이다. 둘째 손자 최정하는 25세로, 생년은 경오년(1870)이며, 둘째 손자 며느리 한산이씨는 28세이고, 정묘(1867)생이다.
제수 밀양박씨의 나이는 67세이고, 생년은 무자년(1828)이다. 박씨의 남편은 주호의 첫째 동생인 崔在安으로, 문서에는 사망하였다고 기재되었다. 연관문서를 통해 최재안은 1888년에서 1891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밀양박씨의 첫째 아들 최양지와 첫째 며느리 진천송씨는 46세이고, 기유(1849)생이다. 둘째 아들 최양철은 42세로, 생년은 계축년(1853)이며, 둘째 며느리 평양조씨는 38세이고, 정사(1857)생이다. 셋째 아들 최양성은 37세이고, 무오(1858)생이다. 셋째 며느리 청주한씨는 31세이며, 생년은 갑자년(1864)이다. 넷째 아들 최양한은 35세로 경신(1860)생이고, 넷째 며느리 전주이씨는 32세 계해(1863)생이다.
주호의 둘째 아우 최재완은 신묘(1831)생으로, 나이는 64세이다. 둘째 제수 횡성조씨는 55세이고, 경자(1840)생이다. 최재완은 아들 최양화는 25세이고, 경오(1870)생이다. 며느리 연일정씨는 27세이며, 생년은 무진년(1868)이다.
주호와 그의 가족이 살았던 곳은 原州牧 古毛谷面 四里 鴨谷村으로, 이 지역은 현재 행정구역상 횡성군 서원면 압곡리에 해당한다.
소유한 노비는 모두 8口로, 남자종 3구와 여자종 5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