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795년에 原州官에서 幼學 崔鎭岌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준호구에 따르면 최진급의 당시 나이는 71세이고, 생년은 을사년(1725)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거주지는 原州牧 古毛谷面 四里 鴨谷村으로, 이 지역은 현재 행정구역상 횡성군 서원면 압곡리에 해당한다.
주호의 부친은 通德郞 崔日明이고, 조부는 통덕랑 崔道煋이다. 증조부는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崔東相이며, 외조부는 學生 沈師哲로 본관은 청송이다.
가족으로는 첫째 아들 崔海量과 첫째 며느리 全州李氏, 둘째 아들 及第 崔海旻과 둘째 며느리 德水李氏, 셋째 아들 崔海鼎과 셋째 며느리 漢陽趙氏, 첫째 손자 崔秉珪와 첫째 손자 며느리 平壤趙氏, 둘째 손자 崔秉瑞와 둘째 손자 며느리 原州元氏, 셋째 손자 崔秉璉과 셋째 손자 며느리 靑松沈氏가 있다.
최진급의 처는 興陽吳氏로 이 문서에서 오씨가 사망한 사실이 적혀있다. 연관문서를 살펴보면 흥양오씨는 1789년에서 1795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호구문서에는 사망한 처의 사조사항이 기재되지 않는데, 이 준호구에는 흥양오씨의 사조가 기록되었다. 오씨의 부친은 학생 吳時慶이고, 조부는 통덕랑 吳相周이며, 증조부는 典牲署主簿 吳鳴邦이다. 외조부는 본관이 안동인 학생 權益海이다.
첫째 아들 최해량은 46세이고, 경오(1750)생이며, 첫째 며느리 전주이씨는 52세로 갑자(1744)생이다. 둘째 아들 최해민은 42세이고, 갑술(1754)생이다. 둘째 며느리 덕수이씨의 나이는 25세이며, 생년은 신묘년(1771)이다. 셋째 아들 최해정은 35세로, 계미(1763)생이고, 셋째 며느리 한양조씨는 36세이며, 생년은 임오년(1762)이다. 1795년 이전에 작성된 연관문서를 보면 둘째 아들 최해민의 처는 생년이 무인년(1758)인 元氏로 기재되었다. 연관문서의 비교를 통해 최해민은 전처 원씨가 사망하여 덕수이씨와 재혼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호의 첫째 아들 최해량의 자식인 첫째 손자 최병규의 나이는 28세이고, 무자(1768)생이다. 첫째 손자 며느리 평양조씨는 30세이며, 생년은 병술년(1766)이다. 둘째 손자 최병서와 그의 처 원주원씨는 갑오(1774)생으로 당시 나이는 22세이다. 셋째 손자 최병연은 최해민의 아들로 나이는 17세이고, 생년은 기해년(1779)이다. 셋째 손자 며느리 청송심씨는 20세 병신(1776)생이다.
소유한 노비는 모두 6口로, 남자종 1구와 여자종 5구가 있다.
문서를 살펴보면 좌측 상단에 '行判官'이 적혀 있고, 그 아래에는 원주판관의 署押이 있다. 1760년(영조 36) 강원도관찰사가 원주목사를 겸임하게 된 이후 기존에 정3품이 임명되었던 원주목사는 종5품 판관이 맡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 문서에 '行判官'을 쓰고 원주판관의 서압을 남겼음을 알 수 있다. 문서 좌측 하단에는 官印과 周挾改印이 겹쳐져 찍혀있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최진급 가문 문서로 24건의 호구문서가 있다. 이를 주호별로 구분하면 부친 최일명 4건, 최진급 6건, 손자 최병규 5건, 증손 崔允大 3건, 현손 崔在寬 6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