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6년 최진급(崔鎭岌)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786.4273-20180501.2017000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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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원주관(原州官)
수취 : 최진급(崔鎭岌)
· 작성지역 원주목
· 작성시기 乾隆五十一年(1786)
· 형태사항 85.0 X 55.0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6.5*6.5, 原州官印)
1 (흑색, 장방형, 14.8*6.4, 周挾改印)
· 원소장처 원주 강릉최씨
· 현소장처 원주역사박물관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786년에 작성된 유학(幼學) 최진급(崔鎭岌)의 준호구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최진급 가문 문서는 모두 24건이 있는데, 이 문서는 연관문서 가운데 최진급이 주호로 기재된 첫 번째 문서이다.
준호구에 따르면 최진급의 당시 나이는 62세이고, 을사(1725)생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가족구성원은 모두 9명으로 처 흥양오씨(興陽吳氏), 첫째 아들 최해량(崔海量)과 첫째 며느리 이씨(李氏), 둘째 아들 출신(出身) 최해민(崔海旻)과 둘째 며느리 원씨(元氏), 셋째 아들 최해정(崔海鼎)과 셋째 며느리 조씨(趙氏), 손자 최병모(崔秉模)와 손자 며느리 조씨가 있다.
주호와 그의 가족이 살았던 곳은 원주목(原州牧) 고모곡면(古毛谷面) 사리(四里) 압곡촌(鴨谷村)으로, 이 지역은 현재 행정구역상 횡성군 서원면 압곡리에 해당한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786년原州官에서 幼學 崔鎭岌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최진급 가문 문서로 24건의 호구문서가 있다. 이를 주호별로 구분하면 부친 崔日明 4건, 최진급 6건, 손자 崔秉珪 5건, 증손 崔允大 3건, 현손 崔在寬 6건이다. 이 문서는 연관문서 가운데 최진급이 주호로 등장하는 첫 번째 문서이다.
준호구에 따르면 최진급의 당시 나이는 62세이고, 생년은 을사년(1725)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거주지는 原州牧 古毛谷面 四里 鴨谷村으로, 이 지역은 현재 행정구역상 횡성군 서원면 압곡리에 해당한다.
최진급의 사조를 살펴보면 부친은 通德郞 최일명이고, 조부는 통덕랑 崔道煋이다. 증조부는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崔東相이며, 외조부는 學生 沈師哲로 본관은 청송이다.
가족으로는 처 吳氏, 첫째 아들 崔海量과 첫째 며느리 李氏, 둘째 아들 出身 崔海旻과 둘째 며느리 元氏, 셋째 아들 崔海鼎과 셋째 며느리 趙氏, 손자 崔秉模와 손자 며느리 趙氏가 있다. 처 오씨의 나이는 59세이고, 무신(1728)생이며, 본관은 흥양이다. 흥양오씨의 부친은 학생 吳時慶이고, 조부는 통덕랑 吳相周이며, 증조부는 典牲署主簿 吳鳴邦이다. 외조부는 본관이 안동학생 權益海이다.
첫째 아들 최해량은 37세이고, 경오(1750)생이며, 첫째 며느리 이씨는 43세로 갑자(1744)생이다. 둘째 아들 최해민은 33세이고, 갑술(1754)생이다. 둘째 며느리 원씨의 나이는 29세이며, 생년은 무인(1758)생이다. 셋째 아들 최해정은 24세로, 계미(1763)생이고, 셋째 며느리 조씨는 25세이며, 생년은 임오년(1762)이다.
손자 최병모의 나이는 19세이고, 무자(1768)생이다. 손자 며느리 조씨는 21세이며, 생년은 병술년(1766)이다. 연관문서의 비교를 통해 손자 최병모는 주호의 첫째 아들 최해량의 아들이고, 崔秉柱에서 최병모로 개명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소유한 노비는 모두 7口로, 남자종 3구와 여자종 4구가 있다.
문서를 살펴보면 좌측 상단에 '行判官'이 적혀 있고, 그 아래에는 원주판관의 署押이 있다. 1760년(영조 36) 강원도관찰사원주목사를 겸임하게 된 이후 기존에 정3품이 임명되었던 원주목사종5품 판관이 맡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 문서에 '行判官'을 쓰고 원주판관의 서압을 남겼음을 알 수 있다. 문서 좌측 하단에는 官印과 周挾改印이 겹쳐져 찍혀있다.
참고문헌
문현주, 조선후기 戶口文書의 작성 과정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3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조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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