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31년에 原州官에서 幼學 崔秉珪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최병규 가문 문서로 24건의 호구문서가 있다. 이를 주호별로 구분하면 증조부 崔日明 4건, 조부 崔鎭岌 6건, 최병규 5건, 아들 崔允大 3건, 손자 崔在寬 6건이다. 이 준호구는 최병규가 주호로 기재된 마지막 문서이다.
문서에 따르면 최병규의 당시 나이는 64세이고, 생년은 무자년(1768)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주호의 부친은 學生 崔海量이고, 조부는 학생 최진급이다. 증조부는 通德郞 최일명이며, 외조부는 본관이 전주인 학생 李鼎根이다.
문서에는 최병규의 처가 사망한 사실을 기재하고 있는데, 연관문서를 통해 주호의 처는 생년이 병술년(1766)인 平壤趙氏이고, 조씨는 1807년에서 1816년 사이에 사망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가족으로는 첫째 아들 崔大顯과 첫째 며느리 延日鄭氏, 둘째 아들 崔泰顯과 둘째 며느리 昌寧曺氏, 첫째 아우 崔秉瑞, 최병서의 아들 崔復顯과 최복현의 처 密陽朴氏, 둘째 아우 崔秉玖와 제수 原州元氏, 최병구의 아들 崔益顯과 최익현의 처 金海許氏, 셋째 아우 崔秉瑜와 제수 密陽朴氏가 있다.
첫째 아들 최대현의 나이는 36세이고, 병진(1796)생이다. 첫째 며느리 연일정씨는 40세이며, 생년은 임자년(1792)이다. 둘째 아들 최태현은 34세이고, 무오(1798)생이다. 둘째 며느리 창녕조씨는 38세 갑인(1794)생이다.
첫째 아우 최병서는 55세이고, 갑오(1774)생이다. 제수 원주원씨는 사망하였다. 사망한 시기는 1819년에서 1825년으로 추정된다. 아들 최복현은 25세이고, 정묘(1807)생이다. 며느리 밀양박씨는 29세로, 생년은 계해년(1803)이다.
둘째 아우 최병구는 53세이고, 기해(1779)생이다. 최병구의 처 원주원씨는 당시 50세이며, 생년은 임인년(1782)이다. 아들 최익현의 나이는 32세이고, 경신(1800)생이며, 며느리 김해허씨는 29세 계해(1803)생이다.
셋째 아우 최병유는 51세로, 신축(1781)생이고, 제수 밀양박씨는 을사(1785)생으로, 나이는 47세이다.
주호와 그의 가족이 살았던 곳은 原州牧 古毛谷面 四里 鴨谷村으로, 이 지역은 현재 행정구역상 횡성군 서원면 압곡리에 해당한다.
소유한 노비는 모두 12口로, 남자종 8구와 여자종 4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