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7년 최윤대(崔允大)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37.4273-20180501.201700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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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원주관(原州官)
수취 : 최윤대(崔允大)
· 작성지역 원주목
· 작성시기 道光十七年(1837)
· 형태사항 75.0 X 50.0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6.8*6.8, 原州官印)
1 (흑색, 장방형, 14.6*5.8, 周挾改印)
· 원소장처 원주 강릉최씨
· 현소장처 원주역사박물관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837년에 작성된 유학(幼學) 최윤대(崔允大)의 준호구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최윤대 가문 문서로 호구문서 24건이 있는데, 그 중 이 문서는 최윤대가 주호로 기재된 첫 번째 문서이다. 연관문서를 살펴보면 최윤대최대현(崔大顯)에서 최윤대로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
문서가 작성될 당시 주호의 나이는 42세이고, 병진(1796)생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거주지는 원주목(原州牧) 고모곡면(古毛谷面) 사리(四里) 압곡촌(鴨谷村)으로, 이 지역은 현재 행정구역상 횡성군 서원면 압곡리에 해당한다.
가족구성원은 모두 3명으로 처 연일정씨(延日鄭氏), 아우 최윤승(崔允升)과 제수 창녕조씨(昌寧曺氏)가 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837년原州官에서 幼學 崔允大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최윤대 가문 문서로 24건의 호구문서가 있다. 이를 주호별로 구분하면 고조부 崔日明 4건, 증조부 崔鎭岌 6건, 부친 崔秉珪 5건, 최윤대 3건, 아들 崔在寬 6건이다. 이 준호구는 최윤대가 주호로 기재된 첫 번째 문서이다.
연관문서를 살펴보면 최윤대崔大顯에서 최윤대로 개명한 것으로 보이고, 개명 시점은 1831년에서 1837년 사이로 추정된다.
문서에 따르면 최윤대의 당시 나이는 42세이고, 생년은 병진년(1796)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거주지는 原州牧 古毛谷面 四里 鴨谷村으로, 이 지역은 현재 행정구역상 횡성군 서원면 압곡리에 해당한다. 주호의 부친은 學生 최병규이고, 조부는 학생 崔海量이다. 증조부는 학생 최진급이며, 외조부는 본관이 평양通德郞 趙時恱이다.
가족으로는 처 鄭氏, 아우 崔允升과 제수 昌寧曺氏가 있다. 처 정씨임자(1792)생이고, 나이는 46세이며, 본관은 연일이다. 연일정씨의 부친은 유학 鄭洧濟이고, 조부는 학생 鄭鍍이며, 증조부는 학생 鄭纉興이다. 외조부는 嘉善大夫 行同知中樞府事 徐壹修로 본관은 달성이다.
아우 최윤승은 40세이고, 무오(1798)생이다. 제수 창녕조씨의 나이는 44세로 생년은 갑인년(1794)이다. 최윤승 역시 주호와 마찬가지로 개명하였는데, 이전 이름은 崔泰顯이다.
소유한 노비는 모두 7口로, 남자종 5구와 여자종 2구가 있다.
참고문헌
문현주, 조선후기 戶口文書의 작성 과정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3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조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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