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756년에 작성된 幼學 崔日明의 호적단자이다.
문서의 첫 행에 戶籍單子로 기재되어 있지만, 서술방식이 連書이고, 官印, 署押, 周挾改印 등을 통해 준호구적인 효력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서에 따르면 최일명의 나이는 52세이고, 생년은 갑신년(1704)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문서의 작성시기와 생년을 보면 최일명의 나이를 53세로 기재해야 하지만 여기에서는 52세로 적고 있다. 주호의 직역을 기재한 부분에 '加現'을 追記하였는데, 이를 통해 최일명은 이 문서에 처음 기재되었음을 알 수 있다. 거주지는 原州牧 好梅谷面 一里 好梅谷 第4統 第2戶이고, 이곳의 統首는 私奴 金仁奉이다. 원주목 호매곡면 일리 호매곡은 현재 행정구역상 원주시 호저면 주산리 일대에 해당한다.
주호의 사조를 살펴보면 부친은 通德郞 崔道煋이고, 조부는 折衝將軍 行龍驤衝副護軍 崔東相이다. 증조부는 成均生員 崔文潑이며, 외조부는 出身 元潤文으로 본관은 원주이다.
가족으로는 처 沈氏, 첫째 아들 崔鎭九과 며느리 吳氏, 둘째 아들 崔鎭祚가 있다. 심씨의 당시 나이는 53세로, 계미(1703)생이고, 본관은 청송이다. 청송심씨의 부친은 學生 沈師晢이고, 조부는 秉節校尉 行龍驤衛副司果 沈潤昌이며, 증조부는 학생 沈瑾이다. 외조부는 본관이 강릉인 학생 崔萬錫이다.
첫째 아들 최진구는 31세 을사(1725)생이고, 며느리 오씨는 28세 무신(1728)생이다. 둘째 아들 최진조는 21세이고, 생년은 을묘년(1735)이다.
소유한 노비는 여자종 1口가 있다. 이름은 道深이고, 나이는 35세이며, 생년은 신축년(1721)이다. 도심의 모친은 사노 海尙이고, 부친의 이름은 알지 못한다.
문서에 기록된 가족 및 여자종의 나이는 주호와 마찬가지로 1살 적게 기재되었다. 문서의 마지막 행에 '風憲元'이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面이나 里의 일을 맡아보던 鄕所職인 풍헌을 맡았던 이의 성은 원씨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최일명 가문 문서로 24건의 호구문서가 있다. 이를 주호별로 구분하면 최일명 4건, 아들 崔鎭岌 6건, 증손 崔秉珪 5건, 현손 崔允大 3건, 내손 崔在寬 6건이 있다. 1756년에 작성된 이 문서는 24건의 연관문서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