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 신귀득(申貴得) 호구단자(戶口單字)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67.0000-20160501.2015000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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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신귀득(申貴得)
수취 : 이사역면(伊士亦面)
· 작성지역 군서면 이사역연촌
· 작성시기 丁卯(1867)
· 형태사항 32.5 X 58.3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7.0*7.0)
· 원소장처 삼척 평산신씨
· 현소장처 삼척시립박물관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이사역연촌(伊士亦硯村)에 사는 유학(幼學) 신귀득(申貴得)이 52세에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이 문서는 열서(列書) 형식으로 신귀득의 사조와 모친, 처, 처의 사조를 기재하고 있다. 문서에 의하면 신귀득 호에는 호노(戶奴) 1구(口)와 노(奴) 2구가 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幼學 申貴得이 52세에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이 문서에는 연호가 기재되지 않아 정확한 작성시기는 알 수 없지만 부친 申思根1858년 7월에 발급받은 納粟帖이 현전하여 이를 통해 1867년에 작성된 문서임을 알 수 있다.
이 문서는 列書 형식으로 신귀득의 사조와 모친, 처, 처의 사조를 기재하고 있다. 주호의 사조를 살펴보면 부친은 學生 신사근이고 조부는 학생 申銀世이다. 증조부는 학생 再申泰이고, 외조부는 학생 裵性儒로 본관은 김해이다. 부친 신사근이 주호였던 문서와는 달리 사조의 직역을 모두 학생으로 기재하고 있다.
모시는 모친 裵氏는 나이가 81세로 본관은 기재되지 않았으나 외조부를 통해 김해임을 알 수 있다. 처 李氏는 나이가 52세이고 정미생으로 본관은 경주이다. 처의 부친은 학생 李萬潤이고 조부는 학생 李命起이다. 증조부는 학생 李時同이고 외조부는 權濟東으로 본관은 안동이다.
노비와 관련하여 이 문서에는 率奴라고 기재하지 않고 戶奴를 기재하고 있다. 신귀득 호에는 호노 1口와 奴 2구가 있어 그 수가 전 식년보다 증가하였다. 호노는 사전적으로는 양반 호에 등재된 노를 뜻하는 용어로 실생활에서 쓰이는 경우 사노비 중 특정 역할을 맡은 노를 의미한다.
문서를 보면 관에서 확인하여 살아있는 사람과 노비의 기재사항 위에 朱點을 찍었다. 黑墨으로 호수 등 빠진 사항을 기재하였고 관인은 간지를 기재한 부분 위에 날인하였다. 본 문서의 확인자는 都尹約正인데 도윤은 조선시대 面에 있는 관직을 칭하고, 약정은 조선시대 향약 조직의 임원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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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황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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