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46년(헌종 12)에 原州官에서 楮田洞面 三里 望宗村에 거주하는 幼學 鄭鴻瑞에게 발급한 호구이다.
문서 첫 행에 호구라 명시하고 있지만 작성방식이 連書인점, 기두어가 考成籍戶口帳內官로 시작하며, 관의 증빙을 받아 발급되었음을 의미하는 官印, 周挾改印, 署押 등이 확인되어 준호구와 같은 효력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서 좌측에 行判官이 기재되고 그 아래 서압이 찍혀있다. 이는 강원도관찰사가 원주목사를 겸임하게 되면서 기존에 원주목사의 관장 사항이었던 호적업무를 판관이 관할하였기 때문에 牧使가 아닌 '行判官'을 쓰고, 원주판관의 서압을 남겼음을 알 수 있다.
문서 좌측 하단에 관인과 주협개인이 겹쳐 찍혀있고 가로로 두 번 세로로 두 번 접어 보관한 흔적이 보인다.
문서에 따르면 정홍서의 당시 나이는 53세 갑인(1794)생이며, 본관은 초계이다. 주호의 거주지인 저전동면 3리 망종촌은 현재 원주시 호저면 만종리에 해당된다. 본 문서에서 개명한 사실을 밝히고 있지 않지만 주호의 인적사항과 사조사항을 살펴볼 때 鄭鴻圖에서 정홍서로 개명한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주호의 부친은 學生 鄭必善이고, 조부는 학생 鄭琛이며, 증조부는 학생 鄭凞國이다. 외조부는 학생 李遇春으로 본관은 전주이다.
처 江陵崔氏가 이미 1837년 호구에서 사망한 사실을 기재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사망한 사실을 기재하고 있다. 그리고 사망한 처의 사조사항까지 기재하고 있는데, 강릉최씨의 부친은 학생 崔鉉玉이고, 조부는 학생 崔重朝이며, 증조부는 학생 崔道原이다. 외조부는 학생 權福衡으로 본관은 안동이다.
정홍서는 첫째 동생 鄭鴻肅 내외와 둘째 동생 鄭鴻祥 내외, 아들 2명, 조카 2명과 함께 거주하였다.
첫째 동생 정홍숙의 나이는 48세로 기미(1799)생이고, 제수 光山金氏의 나이는 49세이며 무오(1798)생이다.
둘째 동생 정홍상의 나이는 44세이고 계해(1803)생이다. 둘째 제수 利川徐氏의 나이는 41세고, 병인(1806)생이다. 연관문서에서 둘째 동생은 鄭鴻元으로 기재되었으나 이번 문서에서부터 정홍상으로 기재되고 있다. 정홍원이 정홍상으로 개명한 사실을 직접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정홍원과 정홍상의 출생간지 및 나이가 같고, 처의 인적사항까지 같은 것을 볼 때 이 둘은 동일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정홍서의 아들과 조카는 이 문서에서 처음 기재되었다. 첫째 아들 童蒙 鄭麟和의 나이는 19세로 무자(1828)생이고, 둘째 아들 鄭龍和의 나이는 16세이며 신묘(1831)생이다. 조카 鄭奭和의 나이는 20세로 정해(1827)생이고, 조카 鄭龜和는 15세로 임진(1832)생이다. 아들과 조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선 시기에 작성된 연관문서에서 기재하지 않은 것은 나이가 어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소유하고 노비는 여자종 1口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