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년 정홍채(鄭鴻采) 호구단자(戶口單子)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19.4213-20180501.2017000118
URL
복사
복사하기
·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정홍채(鄭鴻采)
수취 : 원주관(原州官)
· 작성지역 원주목
· 작성시기 嘉慶二十四年(1819)
· 형태사항 85.1 X 50.4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7.3*7.3, 原州官印)
1 (흑색, 장방형, 11.6*4.3, 周挾改印)
· 원소장처 원주 초계정씨
· 현소장처 원주역사박물관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819년(순조 19)원주관(原州官)에서 저전동면(楮田洞面) 삼리(三里) 망종촌(望宗村)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정홍채(鄭鴻采)에게 발급한 호구단자이다.
문서에 따르면 정홍채갑인(1794)생으로 당시 나이는 26세이고 본관은 초계이다. 주호의 거주지의 현재 행정구역명은 원주시 호저면 만종리이다.
정홍채의 가족구성원으로는 모친 이씨(李氏)와 처 강릉최씨(江陵崔氏), 첫째 동생 정홍숙(鄭鴻肅)과 제수 광산김씨(光山金氏), 둘째 동생 정홍원(鄭鴻元)이 있다.
기재되어 있는 노비는 총 2구(口)가 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819년(순조 19)原州官에서 楮田洞面 三里 望宗村에 거주하는 幼學 鄭鴻采에게 발급한 호구단자이다.
문서 첫행에 호구단자라 명시하고 있고 호구단자 작성방식인 列書로 작성되었지만 官의 증빙을 받아 발급되었음을 의미하는 官印, 周挾改印, 署押 등을 확인할 수 있어 준호구와 같은 효력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단에는 관인과 주협개인이 겹쳐진 상태로 찍혀 있다. 관인 왼쪽으로 '風憲'이라 적혀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面이나 里의 일을 맡아보던 鄕所職인 풍헌을 맡았던 사람의 성이 장씨임을 알 수 있다.
문서 좌측에 行判官이 기재되고 그 아래 서압이 찍혀있는데 1760년(영조 36) 강원도관찰사원주목사를 겸임하게 된 이후 기존에 정3품이 임명되었던 원주목사는 강등되어 종5품 판관이 맡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 문서에 '行判官'을 쓰고 원주판관의 서압을 남겼음을 알 수 있다.
문서에 따르면 정홍채의 당시 나이는 26세이고, 갑인(1794)생이며, 본관은 초계이다. 주호의 거주지인 저전동면 3리는 현재 행정구역상 원주시 호저면 만종리에 해당한다. 주호의 부친은 學生 鄭必善이고, 조부는 학생 鄭琛이며, 증조부는 학생 鄭凞國이다. 외조부는 학생 李遇春으로 본관은 전주이다.
정홍채의 가족구성원으로는 모친 李氏와 처 江陵崔氏, 첫째 동생 鄭鴻肅 내외와 둘째 동생 鄭鴻元이 있다.
모친 李氏의 나이는 55세이고 을유(1765)생이다. 본 문서에 모친의 본관이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1795년 정침의 준호구를 통해 모친의 본관은 전주임을 알 수 있다.
강릉최씨의 나이는 22세이고, 무오(1798)생이다. 처의 부친은 유학 崔鉉玉이고, 조부는 학생 崔重朝이며, 증조부는 학생 崔道原이다. 외조부는 학생 李普霖으로 본관은 용인이다.
첫째 동생 정홍숙의 나이는 21세로 기미(1799)생이고, 제수 光山金氏의 나이는 22세이며 출생간지는 무오(1798)생이다. 둘째 동생 童蒙 정홍원의 나이는 17세이고 계해(1803)생이다.
기재되어 있는 노비는 남자종 1구와 여자종 1구 총 2구이다.
참고문헌
장경준, 조선후기 호적대장과 戶의 성격, 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戶口文書의 작성 과정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3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신태훈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