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1년 정수서(鄭洙緖)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675.4213-20180501.201700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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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정수서(鄭洙緖)
수취 : 원주목(原州牧)
· 작성지역 원주목
· 작성시기 康熙伍拾年(1675)
· 형태사항 55.4 X 54.5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3 (적색, 정방형, 6.9*6.9, 原州牧印)
1 (흑색, 장방형, 16.2*4.0, 周挾無改印)
· 원소장처 원주 초계정씨
· 현소장처 원주역사박물관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711년(숙종 37) 원주관(原州官)에서 저전동면(楮田洞面) 3리(三里) 망종촌(望宗村)에 거주하는 통덕랑(通德郞) 정수서(鄭洙緖)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정수서정유(1657)생으로 당시 나이는 55세이고 본관은 초계이다. 주호의 거주지는 현재 원주시 호저면 만종리에 해당한다.
가족은 아들 정웅주(鄭雄柱)가 있는데 나이는 7세로 을유(1705)생이다.
소유하고 있는 노비는 33구(口)로 이 중 솔거노비는 4구이고 외거노비는 27구이며, 도망노비도 2구가 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711년(숙종 37)原州官에서 楮田洞面 第三里 望宗村에 사는 通德郞 鄭洙緖에게 발급한 호구이다.
문서의 첫 행에 '戶口'라 명시하였지만 주호의 인적사항과 가족구성원 및 주호 내외의 사조사항에 대해 連書한 점, 기두어가 '考成籍帳內'인 점, 官의 증빙을 받아 발급하였음을 의미하는 官印과, 周挾無改印, 署押이 확인되는 점 등을 통해 이 문서는 준호구임을 알 수 있다.
주호가 거주한 저전동면 제3리 망종촌1914년 저전동면호매곡면이 병합하여 호저면이 되어 현재 원주시 호저면 만종리에 해당한다.
주호 정수서의 당시 나이는 55세 정유(1657)생으로 본관은 초계이다. 부친은 通德郞 鄭錫師이고, 생부는 통덕랑 鄭錫諶이다. 생부의 기재를 통해 정수서정석심의 아들인데 정석사의 후사가 없기 때문에 입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부는 嘉善大夫 漢城府左尹 兼五衛都摠府副摠管 八川君 鄭基廣이고 증조부는 贈崇政大夫 議政府左贊成 兼判義禁府事 淸城君 行通政大夫 楊州牧使 鄭爚이며, 외조부는 定略將軍 行龍驤衛副司直 元海雄으로 본관은 원주이다.
주호의 가족으로는 아들 1명이 있다. 이름은 鄭雄柱이고, 나이는 7세이며, 생년은 을유년(1705)이다. 정수서의 처는 原州元氏인데 이 문서에서 사망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문서의 기재되어 있는 노비는 총 33口이다. 그 중 솔거노비의 수가 4구이고, 외거노비는 27구이며, 도망 2구이다.
참고문헌
장경준, 조선후기 호적대장과 戶의 성격, 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戶口文書의 작성 과정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3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신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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