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795년(정조 19)에 橫城縣 井谷面 實美里에 거주하는 幼學 鄭琛의 호구단자이다.
문서 첫행에 호구단자라 명시하고 있고, 호구단자 작성방식인 列書로 작성되었지만 官의 증빙을 받아 발급되었음을 의미하는 官印, 周挾改印, 署押 등을 확인할 수 있어 준호구와 같은 효력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서에 따르면 당시 정침의 나이는 66세로 경술(1730)생이고 본관은 초계이다. 정침의 사조사항을 살펴보면 부친은 學生 鄭凞國이고, 조부는 학생 鄭鰲柱이며, 증조부는 通德郞 鄭洙緖이다. 외조부는 학생 曹挺鳳으로 본관은 평창이다.
정침은 아들 鄭必善 내외와 함께 거주하였다. 아들 정필선은 계유(1753)생으로 당시 나이는 43세이고, 鄭鏞綱에서 정필선으로 개명하였다. 며느리 全州李氏의 나이는 31세로 을유(1765)생이다. 주호의 처는 황씨인데 이 문서에서 황씨가 사망한 사실이 기재되었다. 주호와 그의 가족이 거주한 정곡면 실미리는 현재 행정구역상 횡성군 안흥면 일대에 해당한다.
기재되어 있는 노비는 솔거노비 1구, 외거노비 2구로 총 3구가 있다.
이전 1675년 정석사 준호구와 1711년 정수서의 호구에서는 주호의 거주지가 原州牧 楮田洞面 望宗村이었는데 본 문서에서 주호의 거주지가 횡성현으로 기재되어 있다. 또한 정필선의 아들 鄭鴻采가 주호인 문서에서 거주지가 다시 원주목이 기재되어 있고 이후 16건의 연관문서에서의 주호의 거주지가 원주목으로 기록된 것을 보아 정침 대에 횡성으로 분호하였다가 정필선대에 다시 원주로 돌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장경준, 조선후기 호적대장과 戶의 성격, 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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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신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