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37년(헌종 3)에 原州官에서 楮田洞面 三里 望宗村에 거주하는 幼學 鄭鴻圖에게 발급한 호구이다.
주호의 거주지인 저전동면 3리 망종촌은 현재 원주시 호저면 만종리에 해당한다.
문서 첫 행에 호구라 명시하고 있지만 작성방식이 連書이고, 기두어가 考成籍戶口帳內官로 시작하며, 관의 증빙을 받아 발급되었음을 의미하는 官印, 周挾改印, 署押 등이 확인되어 준호구와 같은 효력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서 좌측에 行判官이 기재되고 그 아래 서압이 찍혀있는데 1760년(영조 36) 강원도관찰사가 원주목사를 겸임하게 된 이후 기존에 정3품이 임명되었던 원주목사는 강등되어 종5품 판관이 맡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 문서에 '行判官'을 쓰고 원주판관의 서압을 남겼음을 알 수 있다.
문서 좌측 하단에 관인과 주협개인이 겹쳐 찍혀있고 가로로 두 번 세로로 두 번 접힌 흔적이 보인다.
문서에 따르면 정홍도의 당시 나이는 44세이고, 갑인(1794)생이며, 본관은 초계이다. 주호의 부친은 學生 鄭必善이고, 조부는 학생 鄭琛이며, 증조부는 학생 鄭凞國이다. 외조부는 학생 李遇春으로 본관은 전주이다.
문서에는 처 江陵崔氏가 사망하였음을 기재하고 있다. 처가 사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씨의 사조사항을 기재하고 있는데, 부친은 學生 崔鉉玉이고, 조부는 학생 崔重朝이며, 증조부는 학생 崔道原이다. 외조부는 학생 權福衡으로 본관은 안동이다.
정홍도의 가족으로는 첫째 동생 鄭鴻肅 내외 및 둘째 동생 鄭鴻元 내외가 함께 거주하였다.
첫째 동생 정홍숙의 나이는 39세로 기미(1799)생이고, 제수 光山金氏의 나이는 40세이다. 둘째 동생 정홍원의 나이는 35세이고, 계해(1803)생이며, 둘째 제수 利川徐氏의 나이는 32세이고, 병인(1806)생이다.
이 문서에서 광산김씨의 생년간지가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연관문서를 통해 김씨의 생년간지가 무오(1798)생임을 알 수 있다.
소유하고 노비는 총 2구로 남자종 1구와 여자종 1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