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22년(순조 22)에 原州官에서 楮田洞面 三里 望宗村에 거주하는 幼學 鄭鴻圖에게 발급한 戶口이다.
문서 첫행에 호구라 명시하고 있고, 호구단자 작성방식인 列書로 작성되었지만 官의 증빙을 받아 발급되었음을 의미하는 官印, 周挾改印, 署押 등을 확인할 수 있어 준호구와 같은 효력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단에는 관인과 주협개인이 겹쳐진 상태로 찍혀 있다. 관인 왼쪽으로 '風憲張'이라 적혀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面이나 里의 일을 맡아보던 鄕所職인 풍헌을 맡았던 사람의 성이 장씨임을 알 수 있다.
문서 좌측에 行判官이 기재되고 그 아래 서압이 찍혀있는데, 1760년(영조 36) 강원도관찰사가 원주목사를 겸임하게 된 이후 기존에 정3품이 임명되었던 원주목사는 강등되어 종5품 판관이 맡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 문서에 '行判官'을 쓰고 원주판관의 서압을 남겼음을 알 수 있다.
문서에 따르면 정홍도는 鄭鴻采에서 개명한 이름이다. 정홍도의 당시 나이는 29세로 갑인(1794)생이며, 본관은 초계이다. 주호의 거주지인 저전동면 3리 망종촌은 현재 원주시 호저면 만종리에 해당한다. 정홍도의 부친은 學生 鄭必善이고, 조부는 학생 鄭琛이며, 증조부는 학생 鄭凞國이다. 외조부는 학생 李遇春으로 본관은 전주이다.
처 江陵崔氏의 나이는 25세로 무오(1798)생이다. 처의 사조를 살펴보면 부친은 유학 崔鉉玉이고, 조부는 학생 崔重朝이며, 증조부는 학생 崔道原이다. 외조부는 학생 李普霖으로 본관은 용인이다.
정홍도는 처 강릉최씨 외에 모친 李氏와 첫째 동생 鄭鴻肅 내외, 둘째 동생 鄭鴻元과 함께 거주하였다.
모친 李氏의 나이는 58세이고, 을유(1765)생이다. 본 문서에서는 이씨의 본관이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연관문서인 1795년 정침의 준호구를 통해 본관이 전주임을 알 수 있다.
첫째 동생 정홍숙의 나이는 24세로 기미(1799)생이고, 제수 光山金氏의 나이는 25세이며, 무오(1798)생이다. 둘째 동생 童蒙 정홍원의 나이는 20세이고 계해(1803)생이다.
소유하고 있는 노비는 남자종 1구, 여자종 1구 총 2구가 있다.
참고문헌
장경준, 조선후기 호적대장과 戶의 성격, 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戶口文書의 작성 과정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3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신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