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5년 원두용(元斗用)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55.4211-20170501.2016000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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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춘천부(春川府)
수취 : 원두용(元斗用)
· 작성지역 춘천부
· 작성시기 咸豊五年(1855)
· 형태사항 42.0 X 45.5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2 (적색, 정방형, 7.0*7.0, 春川府印)
· 원소장처 춘천 원주원씨
· 현소장처 춘천 유용태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855년(철종 6)춘천부(春川府)에서 유학(幼學) 원두용(元斗用)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당시 원두용은 59세로 병진(1796)생이며 본관은 원주이다. 아우 유학 원준용(元俊用)과 제수 김해김씨(金海金氏)와 함께 춘천부 남산외일작면(南山外一作面) 하군자곡리(下君子谷里) 제6통 1호에 거주하였다.
처의 기재사항에는 '고(故)'자를 적어 사망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855년(철종 6)春川府에서 幼學 元斗用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원두용춘천부 南山外一作面 下君子谷里 제6통 1호에 거주하고 있다. 나이는 59세이고, 병진(1796)생이며, 본관은 원주이다.
주호의 사조를 살펴보면 부친은 學生 元興學이고, 조부는 학생 元鳳憲이며, 증조부는 학생 元澄秀이다. 외조부는 학생 鄭春澤으로 본관은 청산이다. 원두용 四祖사항에서 부친을 제외하고 조부와 증조부, 외조부의 이름 한자가 바뀌어 기재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관문서인 1786년 준호구에는 조부의 이름이 元奉言으로 적혀있으나 이후 문서에는 奉彦鳳憲으로 기재되었다. 증조부 원징수는 이전 연관문서에서 莫澂, 莫澄으로 적혀있는데, 이 문서에서는 징수로 기재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처는 '故'라 적어 사망한 사실을 문서에 표시했다.
아우는 유학 元俊用으로 나이는 48세이며, 무진(1808)생이다. 그의 처 김해김씨도 48세로 무진(1808)생이다. 형제의 처는 兄嫂 혹은 弟嫂로 기재를 하는데, 이 문서에서는 처라 기재하였다.
준호구의 작성양식은 경국대전에 명시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발급년도의 연호를 적은 다음 행을 옮겨 기두어인 '考某年成籍戶口帳內'를 적는다. 그리고 주호의 가족이 사는 주소와 가족사항, 그리고 주호 내외의 사조사항을 連書한다. 문서 마지막에는 전 식년의 문서와 대조했음을 뜻하는 戶口相準者를 적은 뒤, 官印과 周挾改印을 찍는다. 이 문서도 이러한 형식으로 작성되었으나, 문서의 내용은 호구단자 작성 방식인 列書로 기재하였따. 또한 주협개인은 찍혀있지 않고, 관인은 2번 찍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원두용이 살던 남산외일작면 하군자곡리는 현재 행정구역상 춘천시 東山面 君子里에 해당한다. 군자곡리남산외일작면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1914년 행정구역의 통폐합으로 東山外一作面에 병합되었고, 동산외일작면1917년 동산면이라 개칭되었다.
참고문헌
장경준, 조선후기 호적대장과 戶의 성격, 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戶口文書의 작성 과정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3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조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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