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년(고종 7) 金生面 遊洞에 거주하는 幼學 尹氏가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주호 윤씨는 병오(1846)생으로 25세이며 본관은 남원이다. 주호의 거주지는 현재 충주시 금가면 일대에 해당한다. 주호의 사조사항을 살펴보면 부친은 通▣▣(德郞) 繕工監監役 尹行斗이고, 생부는 學生 尹行▣(斗)이며, 조부는 通訓大夫 行醴泉郡守 兼安東鎭管兵馬同僉節制使 尹鼎植이다. 증조부는 贈通政大夫 吏曹參議 行通訓大夫 司䆃寺僉正 尹昌胤이고, 외조부는 通德郞 沈明之로 본관은 청송이다. 부친의 직역 일부와, 생부의 이름을 문서의 훼손으로 확인할 수 없다. 생부를 기재한 것으로 보아 윤씨는 윤행두의 양자임을 알 수 있다.
가족은 처 仁川蔡氏만 기재하고 있다. 인천채씨는 23세로 무신(1848)생이다. 부친은 학생 蔡相根이고, 조부는 학생 蔡箕東이며, 증조부는 학생 蔡耆復이다. 외조부는 학생 宋德休로 본관은 진천이다. 증조부의 경우 직역에 '學'만 기재되어 있다.
기재된 노비는 남자종 1구와 여자종 1구가 있다.
기존의 준호구는 본문의 내용을 '考某年式成籍戶口帳內'로 시작하는데, 본 문서는 '帳內'로 시작하고 있다. 관청명과 통・호수를 기재하지 않았다.
문서의 좌측에는 署押이 확인되는데 서압만 찍혀있고 발급인의 신분은 기재하지 않았다.
문서의 보존상태를 살펴보면 상단부분이 훼손이 되었고, 중앙에 구멍이 다수 확인되는데 이는 문서가 접힌 상태로 보관되면서 접히는 부분이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장경준, 조선후기 호적대장과 戶의 성격, 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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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신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