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1년 윤익준(尹翼駿)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711.1111-20180501.2017000357
URL
복사
복사하기
·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한성부(漢城府)
수취 : 윤익준(尹翼駿)
· 작성지역 한성부
· 작성시기 康熙五十年(1711)
· 형태사항 67.0 X 49.0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3 (적색, 정방형, 7.5*7.5, 漢城府印)
1 (흑색, 장방형, 12.5*5.0, 周挾改印)
· 원소장처 한성 남원윤씨
· 현소장처 원주역사박물관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711년(숙종 37) 한성부(漢城府)에서 유학(幼學) 윤익준(尹翼駿)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주호 윤익준무오(1678)생으로 34세이며, 본관은 남원이다. 가족으로는 처 능성구씨(綾城具氏)와 딸이 있다. 거주지로 기재된 한성부 북부(北部) 안국방계(安國坊契)는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화동 일대로 짐작된다.
노비는 총 18구(口)로 1구는 도망갔다.

상세정보

1711년(숙종 37) 漢城府에서 幼學 尹翼駿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이 문서는 신묘년(1711)에 작성한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당시 주호 윤익준무오(1678)생으로 34세이며, 본관은 남원이다. 주호의 거주지인 한성부 北部 安國坊契는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화동 일대로 짐작된다.
주호의 사조사항을 살펴보면 부친은 通政大夫 守黃海道觀察使 兼兵馬水軍節度使巡察使 尹攀이고, 조부는 贈崇政大夫 議政府右贊成 兼判義禁府事 五衛都摠府都摠管 行嘉善大夫 同知敦寧府事 尹天衢이며, 증조부는 贈資憲大夫 吏曹判書 兼知經筵義禁府春秋館成均館事 弘文館大提學 藝文館大提學 世子左賓客 行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 尹祁이다. 외조부는 嘉善大夫 吏曹參判 兼同知義禁府成均館事 五衛都摠府副摠管 世子右副賓客 李廷夔로 본관은 한산이다.
가족으로는 처 綾城具氏와 딸 1명이 있다. 능성구씨는 37세로 을묘(1675)생이다. 처의 부친은 通訓大夫 行忠勳府都事 具廷柱이고, 조부는 通訓大夫 行成川都護府使 具文濟이며, 증조부는 贈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右議政 兼領經筵事 行嘉義大夫 同知敦寧府事 五衛都摠府副摠管綾南君 具鏊이다. 외조부는 通訓大夫 禮賓寺正 鄭載岳으로 본관은 동래이다.
딸은 이름이 기재되지 않고, 나이와 생년간지만 기재되어 있는데 나이는 17세로 을해(1695)생이다. 조선시대 호적은 15세 이상의 男丁인구와 戶의 수 파악에 주안점이 있었다. 그래서 호구문서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15세 미만의 남성과 여성을 기재하지 않았는데 본 문서에서는 어린 딸이 기재되어 예외적인 사례로 보인다.
노비는 총 18구로 남자종 8口와 여자종 9구가 소유한 노비이고, 도망노비는 1구가 있다.
문서 말미에 '戊子戶口准給者'라 기재되어 있어 무자년(1708) 호구와 비교・대조한 문서임을 밝히고 있다.
이 준호구에는 堂上, 郎廳, 監董官의 署押이 있고, 3개의 官印이 찍혀있다. 또한 周挾改印은 좌측하단에 찍혀 있다.
문서의 보존상태를 살펴보면 문서 상단, 중앙, 하단에 일정한 크기의 오염이 반복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아 문서가 접힌 상태로 보관되어 오다 오염이 발생한 것으로 짐작된다.
참고문헌
장경준, 조선후기 호적대장과 戶의 성격, 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戶口文書의 작성 과정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3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신태훈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