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5년 윤행하(尹行夏)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25.4111-20180501.201700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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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화성유수부(華城留守府)
수취 : 윤행하(尹行夏)
· 작성지역 화성부
· 작성시기 道光五年(1825)
· 형태사항 106.6 X 49.0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7.2*7.2, 華城府印)
1 (흑색, 장방형, 14.4*3.6, 周挾改印)
· 원소장처 화성 남원윤씨
· 현소장처 원주역사박물관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825년(순조 25)화성부(華城府)에서 유학(幼學) 윤행하(尹行夏)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윤행하는 26세로 경신(1800)생이고, 본관은 남원이다. 가족으로는 처 청송심씨(靑松沈氏)가 있다. 거주지인 화성부 북부(北部) 광교리(光敎里)는 지금의 수원시 영통구 일대로 짐작된다.
소유한 노비의 수는 5구(口)가 있다.

상세정보

1825년(순조25)華城府에서 幼學 尹行夏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이 문서는 을유년(1825)에 성적한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주호 윤행하경신(1800)생으로 26세이고, 본관은 남원이다. 주호의 거주지는 문서가 훼손이 되어 정확한 주소는 알 수 없지만 연관문서를 통해 北部 光敎里임을 알 수 있다. 화성부 북부 광교리는 지금의 수원시 영통구 일대로 짐작된다.
주호의 사조사항을 살펴보면 부친은 通訓大夫 行醴泉郡守 兼安東鎭管兵馬同僉節制使 尹鼎植이고, 조부는 通訓大夫 行司䆃寺僉正 尹昌胤이며, 증조부는 通德郞 尹熈世이다. 외조부는 通德郞 李圭容으로 본관은 전주이다.
가족으로는 처 靑松沈氏가 있다. 청송심씨계해생인데, 인적사항을 기재할 때 나이를 기재하지 않고, 생년간지와 본관만을 기재하였다. 본 준호구의 작성시기와 생년간지를 통해 청송심씨의 생년은 1803년이고 나이는 23세임을 알 수 있다. 처의 부친은 通德郞 沈明之이고, 조부는 通訓大夫 行利川府使 廣州鎭管兵馬同僉節制使 沈鍷이며, 증조부는 通德郞 沈麟賢이다. 외조부는 通德郞 李殷權으로 본관은 전주이다.
소유한 노비의 수는 5口로 부모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노비 부모의 신분과 이름을 밝히고 있다.
문서를 살펴보면 좌측에는 行留守判官의 署押이 있고, 노비 기재사항 위에는 官印과 周挾改印이 겹쳐서 찍혀 있다. 화성유수부는 1793년 수원도호부에서 승격하였고, 유수 외에 판관 1명을 두었기 때문에 본 준호구에 행유수의 서압과 판관의 서압을 모두 찍은 것으로 판단된다.
문서의 보존상태를 살펴보면 여러 곳에 구멍이 관찰된데 이 때문에 주호의 거주지와 증조부의 이름, 외조부의 직역을 확인할 수 없지만 연관문서를 통해 추정이 가능하다.
참고문헌
장경준, 조선후기 호적대장과 戶의 성격, 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戶口文書의 작성 과정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3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신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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